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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눈썹 Feb 10. 2023

베드민턴 4회차...중학생에게 배우는 사회생활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을 참 즐긴다. 한마디로 자웅동체적인 인간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살아도 먹고 살수 있다면야 쭉 혼자 골방에서 책 읽고 영화보며 살겠지만, 결국 작은 일이 계기가 되어 자꾸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 사람들과 만나면 실망, 좌절과 함께 즐거움, 놀람 등이 온다. 책 속의 사람들이 주지 못하는 현실 속 생생한 감각이 있다. 어차피 그런게 인생사라면 올해는 그 감각을 전부 내 통 안에 담아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베드민턴도 그런 마음에서 시작했다.


수영을 오래할  있었던 혼자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수영은 1인용 수련과 같다면, 베드민턴은 사교적인 스포츠이다. 동호회로 베드민턴  걸음을  , 베드민턴과 아주 조금씩 친해지고 있다.


베드민턴 수업 첫 날, 나 말고도 신입이 있었다. 내 또래 남자분인데, 처음치곤 너무 잘했다. 각자 레슨을 받고 둘이서 난타를 쳤다. 나는 서브조차 제대로 못 넣어서 랠리 진행이 불가했다.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쪽은 히히 웃었다. 왼팔과 오른팔 협응이 이루어지지 않아 왼팔이 공을 떨어뜨린 후에야 오른팔이 헛스윙을 했다. 개그 프로그램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계속 그러고 있으니까 상대분이 어떻게 서브를 넣는지 알려주었다. 시킨대로 해도 몸이 말을 안 들었다. 상대가 웃을수록 점점 위축되었다. 3번, 4번 정도 랠리하다가 운좋게 8번 정도 하니까 '오~ 많이 늘었어요'하면서 칭찬인듯 놀리는 듯 히죽히죽했다. 내가 '정말 짜증난다' 생각함과 동시에 상대편이 "재밌네요~" 말했다. 공이 네트 근처에서 힘없이 툭 떨어지니까 줍기 귀찮았는지 "이 선 넘어오는 공만 칠거에요."했다. '너 학교 다닐때 애들 좀 많이 놀렸겠다. 나는 학생때자주 놀림 받았는데...'속으로 말했다. 딴 생각을 하니 집중이 점점 흐려졌다. 힘들어서 조금 쉬겠다고 하고 벤치에 앉았는데, 코치님이 어떤 언니에게 "이 분이랑 연습해주세요"하고 부탁하셨다.


언니는 아래 위 테니스 정장(?)을 갖춰입은 딱 봐도 실력자였다. "초보라 너무 못해서 괜찮을까요?"했는데. "괜찮아요. 자꾸 해야 늘죠."하고 웃어주셨다. 몇 번 공이 왔다갔다 하는 동안 "한 달만 딱 해봐요. 이거 하다보면 재밌다니까?"했다. 다정한 응원에 나도 기분이 금새 나아져서 신나게 공을 쳤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으니까 라켓에 공도 잘 맞았다. 얼굴부터 전신이 땀 범벅이 되어서 가져온 운동복과 속옷까지 다 갈아입었다. 거울로 보니 혈색도 맑아졌다. 재미있네 베드민턴 요놈?


그렇게 몇 번 수업에 참여하고, 오늘이 네 번째였다. 코치님께 레슨받고 손이 비었다. 회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직 경기에 들어가기엔 흐름을 심각하게 방해할 정도의 실력이라 쉽게 낄 수가 없었다. 그전에는 코치님이 회원님들에게 나랑 쳐주라고 부탁을 하셨지만, 언제까지 코치님을 기다리고 있을수도 없고. 어쩌지 눈알만 굴렸다. 누구 한 명에게 함께 난타 연습이라도 하자고 말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쭈구리의 선택은 결국 구석에서 라켓 휘두르는 연습이었다. 몇 번 진지한 연습인 척 라켓을 휘둘렀는데, 이런다고 솔직히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고 내가 사람들에게 말 못걸어서 이러고 있다는 걸 경기장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라켓을 내려놓고 괜히 셔틀콕을 정리하는데 첫 날에 인사했던 활기찬 아저씨가 와서 "공은 좀 쳤어요?"물으셨다.


나 : "이제 치려고요"

아저씨 : "이게 '생!활!체!육!'아니가. 여기서 공주님 왕자님처럼 있으면 공 못칩니다. 저기 어린 학생(중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었다) 있제. 자기 이름표 보여주면서 '이거 제 이름입니다. 저랑 게임 한번 하시지요.'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다들 공 많이 쳐주지. 여기서 공주님처럼 있으면 아무도 안 봐줍니다...(무한 잔소리...)"

나 : "제가 좀 소심해가지고요 헤헤."


이렇게 잔소리 잔뜩 듣고 코치님도 이제 셔틀콕 그만 정리하라고 하셔서 어쩔  없이 혼자 서브 연습을 하시는 점잖아 보이는 어르신께 갔다.  분도 경기에 끼기에는 실력이 부족해서 혼자 치시는가보다 싶어서 "저도 완전초보인데 같이 치실래요?"하고 말했다. 어르신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방해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래도 거절은 않으셔서 둘이서 난타를 치기 시작했다. 이번이  번째 연습인데 그래도 처음보다는 실력이 많이 나아졌다. 혼자 흐뭇해하는데 어르신이 "얼마나 쳤어요?"물어보셔서 1회는 줄여서  번째 연습이라고 거짓말했다. 첫째  함께  실력자분과 비교하면 확실히 공도   놓치고, 힘도 약하신  같았다. 그래서 같은 초보인  알았는데 살짝 보니까 땀 흘린 자국 없이 얼굴이 뽀송했다.


나 : "안 힘드세요?"

어르신 : "나는 라켓 대고만 있는데 안 힘들지. 움직이질 않는데."


 초보가 아니셨구나...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나만 계속 공을 줍고 있네. 그렇게 한동안 대화없이 싱싱한 기운으로 랠리가 오갔다.   얘기가 있겠나 돌아오는 공에 라켓을 갖다대보면 어떤 기분으로 치고 있는지  느껴지는데. 어르신은 ' 세게 쳐도 되요.'하셨다. 이미 혼신의 힘으로 치고 있기는 했지만 감사해서 '!"하고 말했는데, 목소리까지 우렁차게 나왔다. 불과 십분 전에 바닥에 쭈구리고 앉아 있던  상상이   정도로 활기찬 몸놀림을 하며. 한차례 난타 플레이가 끝나고 히히 거리던 남자분을 만났다.


남자 : "이제 공 잘 맞네요."

나 : "아니 저번부터 계속 은근히 놀리시는 거 같네요?"

남자 : "아 진짜로~ 라켓에 공 잘 맞으시는 거 같아서. (히히)"

나 : "실력자 분들이 많이 쳐주셔서요.(하하) 공 많이 치셨어요?"

남자 : "여기 오면 그래도 어르신들이 많이 놀아주십니다. (히히)"


나는 권위적인 것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요청하지 않았는데 상대가 가르쳐주려고 할때, 상의없이 정한 규칙을 내밀때 불편하다. 그래서 남자 분이 서브를 가르쳐주고, '여기까지 공이  오면  칠거에요' 했을  머리가 띵하게  몸으로 거부반응이 나왔다. 첫날엔 정말 얄밉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넉살 좋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상대가 넉살좋게(?) 권위를 부리더라도 내가 반응하지 않으면 되는데 권위를 따르는 습관이 많이 배어있었나보다. 권위를 권위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상쾌한 웃음이 나왔다. 


나는 일할 때도 혼자 거나 상대방이  리드에 따라주는 걸 좋아한다. (어쩌면 내가 권위적인 사람인건가?)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내가  못하는  아예 손도 안대는 편이다. 그런데 못하는 것도 하다보니 재미있더라. 목소리 커지더라. 공주님처럼 있지 말라는 잔소리도 틀린  하나 없다. 낯가린다는  뒤에 숨어서 언제나 다른사람이 먼저  내밀어 주기를 바란다.  못해도 어떠나. 여기 놀려고 왔는데. 재밌게 하면 되지. 요즘 베드민턴이  유일한 사회생활이다. 이름표 보여주며  게임하자고 하는 중학생처럼 나도 해봐야겠다. 베드민턴으로   둥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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