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 사이에서 가장 흉흉한 괴담은 친구가 요양원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죽을 때까지 가족들 속에서 살아가던 어른들을 보고 살아왔던 할머니 입장에서는 요양원은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이 버려지는 곳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할머니가 ‘00할머니는 자식들이 요양원에 버렸다’라고 말하며, 더 이상 친구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는다. 세상이 자기 것이라 생각하며 인생을 개척해왔을텐데, 나이가 들어 자기가 할 수 있는 선택들이 점점 좁아지는 걸 옆에서 보고 느낀다. 나에게도 다가올 미래이다.
할머니는 자주 '그냥 죽어버리면 좋을텐데' 라는 말을 한다. 살아있는게 허무할 정도로 텅 비어있는 삶은 어떨까. 어디로도 탈출할 수 없는 기분을 잘 알지만, 할머니를 어떻게 웃게할 수 있는지. 나 혼자 힘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몇 달 전까지만해도 할머니에게 요양보호사 이야기를 하면 모르는 사람이 집에 오는 게 싫다고 단칼에 거절했다. 이제 더 이상 안 되겠는지 못이기는 척 고모를 따라 보건소도 가고, 건강공단도 갔다.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도 마음이 심란하고 좋지 않았지만 국가의 혜택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는 절차다.
보건소에서 치매 검사를 받으니 평균 16점에 한참 못 미치는 10점이 나왔다. 그 정도로 심각한 줄은 몰랐는데 인지능력이 조금씩 약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사실이었다. 이틀 뒤에는 공단에서 담당자가 할머니 상태를 체크하러 집으로 왔다. 할머니가 힘들어하는 부분을 자세하게 말씀드려야 등급을 잘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어떤 내용을 말씀드릴지 전날부터 정리를 해두었다.
할머니는 모르는 사람이 왔다는 사실에 긴장했는지 평소보다 눈을 더 반짝 뜨셨다. 컨디션 좋지 않을때 기준으로 말하자고 고모가 여러 번 당부를 했는데 혹시나 등급을 잘 못받게 될까봐 진땀이 났다.
"평소에 화장실은 어떻게 가세요?"
"(비틀비틀 하지만 잘 걸으며)이렇게 벽 짚고 잘 갑니다"
"평소 잠은 잘 주무세요?"
"잠은 잘잡니다"
"할머니 수면제 먹어야 자잖아요!"
이렇게 웃지 못할 대화가 이어지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담당자와 고모 나 셋이서 따로 나와서 할머니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 목욕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공단 직원분이 노인분들이 힘이 없어서 생각보다 혼자서 드는 게 많이 힘들다고 공감해주셨다. 두 사람이 붙어서 해야한다고 했다. 버겁지만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한다고 생각하던 일들을 힘들었겠다고 이해받아서 위안이 되었다.
평소 자주 가는 병원에서 건강상태체크를 받아서 공단에 제출하고 서류준비는 마무리 되었다. 등급을 받게 되면 데이케어센터와 방문요양보호 서비스 두 가지를 신청하기로 했다. 데이케어센터는 치매가 있는 분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 할머니가 가셔서 자존심 상하실까봐 걱정이 되기는 했다. 고집쟁이 우리 할머니가 과연 잘 적응하실 수 있을까.
할머니 요양등급은 3급이 나왔다. 1,2급이 나오면 혼자서 거동하기 힘들어서 요양원에 가야하는 정도라고 하니. 꽤 높은 등급이다. 할머니가 가게 될 데이케어 센터장님 말씀으로는 할머니는 3급이 나올 줄 몰랐는데 연세도 많으시고 용변실수를 하는 일이나 거동이 어려운 점 등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