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엔 알바, 오후엔 학교. 규칙적이고 단순한 일상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었다. 한 번씩 출처 모를 따분함과 불안함도 올라오긴 했다. 올해 곡 9개 낼거라고 다짐해놓고 아직 발표한 게 없어서 은근 마음이 찝찝했던 것이다.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공연해서 시간이 없다는 걸 변명 삼을 순 있겠다. 정확히 말하면 음원을 내기 위한 시간과 돈이 충분치 않았다. 뭐 하나라도 마련이 되어야 추진을 할텐데. 이대로 쭉 애매한 안정감에 만족하며 지내려나 내심 걱정했던 것 같다.
그러다 이번 학기 학교에서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다시 마음에 불이 지펴졌다.
우쿨렐레 자격증 취득 도전 중인 동료 선생님A
A 선생님은 성악 전공에 바이올린도 연주할 수 있고, 유학까지 다녀오신, 공부에 아낌없이 투자해온 분이다. 교원 자격증이 있어 그동안 쭉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해오셨다. 특수교육도 처음, 동화동요 과목도 처음이라 걱정이 많다고 걱정이셨다.
의기소침해 보이는 선생님께 도움이 될까해서 좋은 교구나 수업팁을 조금씩 알려드리며 이런저런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눴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을 좋게 봐주셨는지. 만날 때마다 '선생님은 실력도 좋고 가능성도 충분한 분이라서 교육 쪽으로 더 많이 파보면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거에요'하고 용기를 주신다.
며칠 전 수업 마치고 서류 작업할 게 있어서 방과후 강사 대기실에 남아 있었는데 마침 선생님이 계셨다. 선생님은 최근 동화구연 자격증을 취득했고, 지금은 우쿨렐레 자격증반을 등록하셨다. 그날은 우쿨렐레 악보에 코드를 하나하나 적어 넣으며 연습하고 계셨다. 코드가 안 외워져서 큰일 이라며 진도표를 놓고 동그라미에 빗금치며. 어릴때 피아노학원에서 연습하던 방식으로 연습하고 계셨다.
이미 음악에 관해서는 배운 게 많은데도 또 새로운 공부에 뛰어드는 모습에 놀랐다. 그리고 연습에는 왕도가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오랜만에 보는 진도표가 정겹고 멋있어서 사진 찍어도 되냐고 하며 호들갑을 부리니, 민망한 듯 웃으셨다. 본인도 이 방식이 무식하다 생각은 하는데 될 때까지 하는 것이 클래식 배울 때부터 체화되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한편 우쿨렐레 연주한지 5년 되었는데 아직 기본 코드밖에 모른다는 사실이 민망해졌다. 우쿨렐레 수업을 해도 초보자들 위주로 진행하다보니 어려운 코드는 굳이 익히지 않아도 괜찮아서 실력이 계속 그대로 머물러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사람을 가르칠 수도 있고, 음악작업에도 우쿨렐레를 활용하려면 좀 더 연습해두면 좋겠다. 이러다 방학 지나고 돌아오면 선생님보다 실력이 뒤질 것 같아 우쿨렐레 교재를 새로 구입하고 진도표도 샀다.
어린 나이라는 컴플렉스를 영업으로 극복해버린 또래 선생님C
작년에 같이 일한 선생님 중에 친해진 분 B가 있는데, 그 분과 친한 선생님C가 우리 학교에 근무하신다. 오며가며 B선생님 이야기를 했었다. 방학을 앞둔 마지막 날 방과후 강사 대기실에서 만나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학교 말고 다른 곳은 수업 나가세요?"
"전에 복지관에서 수업했었는데 어떻게 뚫는지를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다른 곳에 수업 하세요?"
"저는 학원이랑 복지관에도 수업 나가고 있어요."
"와... 역시! 왠지 수업 많으실 것 같았어요."
"저는 맨땅에 해딩하듯이 시작했어요. 처음엔 어리다고 무시당하고(방과후, 예체능 강사 분야에서는 20-30대는 어린 나이다!!), 불합리한 일도 많이 겪었어요. 그러다 부산 전역 복지관 돌면서 포트폴리오를 돌렸어요. 그 뒤부터 여기저기 연락오고 일도 많아졌어요."
"와 진짜 대단하다. 쉬운 일 아닐텐데"
"선생님도 2학기부터 한번 해보세요. 아니 그럴게 아니라 저랑 같이 다닐까요?"
"너무 너무 좋죠!! 진짜 그래도 되요?"
"네~ 연락해서 같이 가요"
올 초에 다른 선생님이 영업을 해보라는 조언을 해주신 적 있었는데 용기가 안생겨서 선뜻 못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데 이번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도움받는 것을 어려워하는 성격인데 이번엔 먼저 손 내밀어 주셨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덥썩 잡아보려고 한다. 선생님이 차도 갖고 계셔서 선생님 차 타고 움직이고 밥은 내가 사드리고~ 도움드릴 게 있으면 두배로 갚아드리면 되지 않을까!!!
'잘먹고 잘사는 아티스트가 될래' 브런치를 열고 여러 일들을 경험했다. 공단 민원팀, 시민센터 사무직, 공연기획, 라디오 출연, 행사출연 가수, 행사진행, 작곡교육, 빵집, 영어강사, 타로카드 마스터 등등... 돌아보면 전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점점 가야할 방향이 선명하고 단순해진다.
주변 음악가들 대부분이 알바, 직장, 방과후 강사로 일하는 분야가 나눠지고. 직접 영업을 하러 다닌다거나 사업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다른 옵션은 엄두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보다 적은 돈을 벌면서도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 혼자서도 악기를 잘 다뤄서 작업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사람. 밤 늦게까지 공연하고 술자리에서 음악가들과 어울리면서 기회를 얻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안정적인 벌이가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빌려야 음악을 완성할 수 있고, 10시에 자고 6시에 일어나야 개운한 사람인데. 음악할 체질이 아닌건가 생각하기도 했다.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사람들이 모이면 전부 다 다른 성향을 가졌을텐데 그 중에 나에게 딱 맞는 모델이 있을리 만무하다.
일년 반째 알바를 하고있다. 일이 능숙해지니까 매일 마무리가 빨라지고, 경기는 좋아질 기미가 없어 근무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줄어든 근무시간 만큼 수입도 줄었고. 알바하면서 좋은 에너지도 얻고 생활에 도움이 되어 좋지만 일주일 근무해 버는 돈이 학교 하루 수업하는 것과 같으니... 이제 슬슬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다. 최근엔 날이 더워서 아침에 일하고 오후에 학교가면 동태눈깔에 머리는 땀에 절어있는 것도 맘에 걸린다. 그동안 교육 능력치도 많이 쌓였고. 본업에 투자해야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최근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의 영향으로 앞으로 나아갈 동력이 생겼다. 교육에서 벌이를 늘려서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차도 장만하고 수업을 열심히 다닐 것이다! 번 돈으로 음악 작업에 세션비, 편곡비 등으로 쓰고~ 학생들 만나며 받은 영향으로 동요곡집도 발표하고, 어린이 행사도 가고. 그렇게 지낼 모습이 상상된다~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