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빙슛' 음악작업 일지

by 권눈썹

1월 22일(D-10)

마침 6개월 전에 주문한 일렉기타가 도착했다. 은은한 광택이 있는 카키 색상에 픽가드는 빈티지한 노란빛으로 주문 제작했다. 이제 그루브한 음악부터 아재감성 하드락까지 음악세계를 넓혀가기에 완벽한 장비가 구비되었다.


이번엔 신나는 음악을 만들어야 되겠다. 단순한 리듬과 멜로디만으로 에너지가 폭발하는 락을 만들어야지. 마음에 드는 멜로디만 하나 나오면 돼… 하나만…


그렇지만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이번 달은 유독 멜로디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1월 24일(D-9)

분명 마음이 급하면 어떤 노래든지 만들어 내겠지만, 아직은 떠오르는 음들이 마음에 안 든다. 강력한 노래를 만들고 싶은데 어쩐지 자꾸 귀여운 멜로디만 나온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노래를 만들려고 처음부터 애쓰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마음을 비우자고 생각을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좋은 곡 하나쯤 쓸 수 있겠지.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은 마음은 내려놓고 다시 기타를 친다


1월 25일(D-8)

책에서 찾은 재미있는 문구들과, 머리에 떠오르는 아기자기한 단어들을 이것저것 써내려갔다.

’만세만세만만세’ ‘어잇어잇’ ‘예이예이예!’같은 감탄사 같은 코러스를 넣어보면 어떨까 싶어 일단 써봤다.


1월 26일(D-7)

두 가지 포인트를 잡았다. 하나는 ‘축구에 중독되면서 주말에 열심히 일어나고, 축구잘하는 몸을 원하게 되는 이야기’. 또 다른 하나는 ‘전직 국가대표 출신인 여자팀 선수에게 축구를 가르쳐주려고하는 상대편 실버축구단 선수를 경기에서 따돌리는 이야기’ 였다. 두 가지 이야기는 넣고 싶은데, 너무 내용이 많아서인지 진도가 안 나간다.




1월 27일(D-6)

노트북에 1시간짜리 여자축구 중계 영상을 틀어두고 기타를 쳤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야성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모습을 보면 힘을 받아서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려나. 별로 도움이 안되었다. 괴로워하는 와중에 연습실을 같이 쓰는 댄서 민우가 와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 조언을 준다. 그다지 도움이 안된다.


세 시간 동안 억지로 억지로 인트로를 만들고, 중간부분에 코드가 한 음씩 올라가는 식으로 변주를 주어야겠다는 정도의 아이디어까지 나왔다.


1월 28일(D-5)

꿈에서 기타를 쳤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타를 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생방송 나가야하니까 손에 기타 연주가 익어야 한다. 오늘은 어떻게든 완성을 지어야 한다.


어제 쳐보던 멜로디를 연주해 보았다. 도입부는 축구를 잘하는 몸을 가지고 싶다는 내용. 가사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오늘 보니 너무 개인적인 것 같다. 결국 다 없애버렸다. 뒷 부분은 시원하게 로빙슛을 날리는 장면이다. 앞과 뒤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도입 부분을 덜어내고 나니까 술술 풀린다. 현장감 있는 노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꿈에서 작업한 게 도움이 되었는지 가사가 잘 써진다.


멜로디랑 코드를 심플하게 만들 거고, 축구 경기하는 모습이 들어가 있으니까 이번에는 빠르기 변화로 재미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노래는 특히 연주할 때 분위기를 휘어 잡아야 한다. 지루하지 않게 만들려고 하다보니 코드도 많고 반주에 변화도 많은 편인데, 내가 기타를 그만큼 잘 치지 못하는데 괜찮을까?? 아아아… 괴로워하다가 그냥 용기를 가지기로 했다. 내가 소화만 잘 하면 될 거야. 기분 좋게 연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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