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할머니의 사회생활은 끝나지 않았다

할머니의 데이케어센터 적응기

by 권눈썹

고모가 할머니를 모시고 데이케어 센터에 다녀오셨다. 할머니가 싫어하실까 걱정했는데 다녀온 얼굴을 보니 밝았다. 직원들이 다들 친절하고 에어컨이 시원해서 좋았다고 했다. 앞으로 월화수는 데이케어센터에 가고, 목금토는 요양보호사님이 집으로 오기로 했다.


오전 8시에 차량이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아파트 현관에 나오니 데이케어 차량이 있었다. 젊은 남자직원이 할머니를 부축해서 차에 태워드렸다. 인상들이 다들 선했다. 첫날이라 시설을 둘러보고 싶어서 할머니와 함께 빈자리에 끼여서 갔다. 건물에 도착하자 직원 두분이 마중 나오셨다. 할머니와 같은 ‘윤’씨 성을 가진 분이 계셨는데 할머니를 보더니 ‘우리 고모 오셨네~’하면서 살갑게 맞이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할머니도 조카(?)와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며 오랜만에 밝게 웃으셨다.


센터는 3,4층 두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3층에서는 수업을 듣거나, 식사를 한다. 4층은 목욕하는 곳과 쉬는 곳, 운동하는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일 색칠수업이나 만들기 수업, 건강강의가 있다. 주1회 섹소폰 연주자분이 오시는 노래교실도 있다. 원하시는 분들에 한해 참여하는 야외 나들이 프로그램도 있다.


센터에 들어가서 할머니가 먼저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친근하게 다가갔다. 역시 확신의 ESTJ! 할머니는 인기인의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본투비 스타라는 걸 잠깐 잊고 있었다. 한쪽 벽에 크게 창이 나 있어 쾌적하고 밝았다. 할머니 다섯 분 정도 먼저 도착해 콩을 펼쳐놓고 골라내고 있었다. 직원들이 할머니를 모시고 가서 인사도 하고 같이 해보시라고 앉히셨다. 평소에 집에서 콩나물 다듬는 것도 힘들어서 15분 정도 하다가 누우셔야 하는 체력인데 여기서는 40분 정도를 그 자리 앉아서 계속 하셨다. 전날에 잠을 설치셔서 눈이 벌써 움푹 꺼져있었는데도 할머니는 욕심있게 열심히 하셨다. 다른 할머니들이 우리 할머니에게 연세에 비해 정말 건강하시다고 덕담을 해주셨다.


우리 할머니는 센터에서 거의 맏언니 격이었다. 총 28분이 이 센터를 이용하고 있는데 연세 구십세가 넘는 분은 우리 할머니 포함 다섯 분이라고 한다. 콩 고르는 분 중에 치매가 진행 중인 할머니는 본인이 알바하러 온 것으로 알고 계셨다. ’이거 일해서 돈 얼마 안되니까 우리 아들이 날 도와주지~ 아들이 포항 포스코에 일하잖아‘하고 이야기 하셨다.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감각을 가지고 싶어서 원하는대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우리 할머니가 얘기하는 내용은 늘 정해져있다 - 자식걱정, 옛날 이야기, 신세한탄 - 이제 내용을 다 외우고 있어서 나에게는 덤덤함을 넘어 짜증버튼이 되어버린 그 이야기들은 여기서도 흔한 소재였다. 할머니들은 ‘너무 오래 살아 큰일이다’하며 웃었다. 다른 할머니 입으로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렇구나. 할머니들이 참 성실하게 살아오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9시 반쯤 되니 아침간식으로 흑임자 죽이 나왔다. 혼자 식사하기 어려운 분들은 직원분들이 숫가락으로 떠먹여드렸다. 간식을 먹고나서 체조를 했다.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찔레꽃’ ‘천태만상’등의 트로트 노래에 맞춰 운동을 했다. 나도 같이 체조하면서 할머니들을 지켜봤다. 우리 할머니는 흥이 올라 노래까지 불렀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 할머니와 이야기 나눴는데 할머니 표정이 밝고 즐거워보였다. 몸은 피곤해도 재밌다고 했다. 특히 운동하고 싶을 때 복지사 선생님들이 부축해서 기구를 사용하는 걸 도와주어서 좋다고 했다. 평소에도 다리에 힘을 유지하려고 하루에 한 번 산책하는데 점점 힘에 부치던 터였다.


센터에 다니시기 전 할머니는 매일 하루 세 시간 씩 노인정을 다니셨다. 가족들이 와서 식사를 하다가도 오후 두시가 되면 노인정 가야한다고 부리나케 일어나던 할머니이다..! 그래서 노인정에서 만난 절친한 친구들이 많으시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다른 대안이 없으니 그 안에서 기분상하는 일, 자기와 잘 안맞는 사람이 있어도 참고 다녔던 모양이였다. 센터는 이용인원도 많고, 자기 컨디션에 맞게 원하는 활동을 스스로 정할 수 있어 자율성이 높은 편이다. 워낙 새로운 사람과 금방 친해지는 성격이라 적응도 금방 하셨다.




기분 좋게 잠자리 준비를 하고 있는 할머니를 보니 나도 마음이 놓였다. 센터에 가면 수업따라가느라 바쁘니 공연히 나에게 전화해서 화풀이 할 일도 없다. 할머니가 어디 나갔다와서 문을 잠갔는지, 주전자를 불에 올려놓은건 아닌지 늘 걱정이었는데. 위험한 일이 없으니까 마음이 편하다. 식사도 제때 챙겨드실 수 있으니 그것도 너무 좋다.


안심되는 부분이 많을수록 그동안 내가 보이지 않게 마음고생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동안 '왜 우리 할머니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맨날 불평인가?' 생각하며 할머니에게 노인다운 모습을 기대했다는 자각도 들었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듯이, 사회인이 일을 하듯이, 할머니도 또래를 만나는 사회생활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렇게 밖에서 풀고오니 저녁에 짜증을 안내고 웃어주셔서 좋았다. 할머니가 그냥 행복하게 지내고 가족들을 아끼는 사랑을 가진 존재로서도 소중하구나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스스로도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를 수 있다는 점도 실감하게 되었다. 겉으로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지만 외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할머니에게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직 딱 하루 갔기 때문에 앞으로 잘 적응하실지 어떨지는 지켜봐야하겠지만 일단은 할머니가 표정이 밝아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할머니의 92세 삶은 여전히 반짝반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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