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때 아버지와 나누던 실랑이가 떠오른다.
여느 중산층 아버지들처럼 우리 아버지도 늘 입에 '돈'을 달고 사셨다. 시험 볼 때마다 친구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게 괴롭다고 말할 때마다 아버지는 ‘경쟁은 일상이다. 옆 사람을 밟고 올라서야 돈을 벌 수 있다. 자본주의의 꽃은 돈이다.'라 하며 내가 세상물정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한다고 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너무 속물적이라고 생각해서 '돈 얘기 좀 그만할수 없냐'고 짜증스럽게 말하곤 했다.
어느덧 성인이 된지도 10년이 넘었다. 나는 여전히 어떻게든 경쟁을 피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당시에 투박하게 표현했던 말의 속 뜻을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었고,
치열했던 다툼이 무색하게 이제는 누구보다 돈에 웃고 돈에 우는 사람이 되었다.
음악, 글, 그림 등 예술분야를 좋아하다보니 이제는 그 일로 돈도 벌게 되었지만 연비가 낮아 늘 돈에 쪼들리며 산다.
패셔니스타로 살기위해서는 운동화 한 켤레로는 부족하다. 자주 안 신더라도 검은 구두만 있으면 안되고 흰색이나 노란색 구두도 있어야 한다.
깊이 생각하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업실이 있어야 한다.
서른 넘으니 병원 갈일도 부쩍 늘었다. 십만원, 이십만원 금새 써버려서 여윳돈이 있어야 한다.
배우고 싶은 게 있을때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 실력있고 인내심 많은 선생님에게 배워야 한다.
매일 걷는 길이 참을 수 없이 따분해지면 가끔 새로운 곳으로 여행도 가야한다.
문화의 발전은 비가역적이라 했던가.
좋은 것, 멋진 것 다 알아버린 나를 먹여살리려니 대충 벌어서는 어렵다.
아직 딸이 없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