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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눈썹 Dec 19. 2022

뮤지션 언니 오빠들과 만남

오늘 출근해서 하려고 생각한 일은 안하고 계속 딴 데로 샜다. 글쓰면서 어떤 음악을 틀어둘까 스트리밍 사이트를 뒤지다가 고른 곡이 마음에 들어서 다른 곡으로 파도타고 넘어가고. 갑자기 이번 음반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노 고민하며 프로듀서들 알아보다가 두 시간이 순삭되었다.


평소엔 일찍 퇴근하기 위해서 일을 후딱하고 마무리 짓으려고 늘 서두르는 편인데 오늘은 긴장을 조금 풀었다.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조금의 불안도 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오랜만이다. 아무래도 지난주에 만난 인연들 때문인 것 같다.




지난 금요일엔 '슈퍼스타' 곡으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이한철님과 함께 라디오 출연을 했다. 청년들이 부산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논의하는 공개 방송이었고, 음악공연은 처음과 끝에 곁들여지는 정도의 역할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방송내용은 차치하고 이한철님과 만남에 잔뜩 설렜다. 음악으로 비춰지는 모습과 실제 모습이 다른 유명인을 몇번 봐왔던 터라 실망을 할 각오를 하고 갔는데 만나자마자 원래 아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대해주셔서 나도 순식간에 풀어졌다. 기타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그날은 기타없이 오셨기에 아쉬운 마음이 들어 '제 기타 빌려드릴까요?'했고 현장에서 내 기타로 한 곡을 연주하셨다. (@0@ 이게 무슨 일이람!!?) 내가 노래할때 이한철님은 손으로 리듬박자를 잡아주셨고, 이한철님의 '수퍼스타'는 후렴을 함께 불렀다.

나는 자작곡 '그림자맨'을 불렀는데 그림이 그려지는 듯 회화적인 곡이라고 느꼈다고 하시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고 코멘트 해주셨다. 원래 그런 의도로 만들긴 했지만 아무도 이렇게 말해준 적이 없었는데, 지역 무명가수의 음악이라도 관심있게 들어주시는 것에 따뜻함을 느꼈다. 방송 마친 후에는 먼저 연락처를 교환하자고 얘기해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번호를 주고받았다. 시간여유가 있었으면 다른 곡들도 들려드리고 싶었는데 미리 예매한 차시간에 맞추느라 급히 돌아가셨다. 다음에 만나면 꼭 따뜻한 차 한잔 하기로 약속을 하고.



토요일에는 부산 여성 싱어송라이터 모임 반햇나 언니들과 연말파티 겸 작은공연을 했다. 그전에 따로따로 만난 적은 있어도 한 자리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라 어떤 분위기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호스트이지만 게스트 같은 기분으로 사람들을 초대하지 않고 혼자 가볍게 갔다. 언니들과 인사도 제대로 못한 채 공간정돈을 하며 손님맞이 준비를 했다. 손님들이 모두 도착하고 차례로 노래를 불렀는데, 행사에 초청받아 혼자 노래할때와 느낌이 사뭇 달랐다.


휑한 무대에 혼자 올라가 벌벌떨며 노래하는 마음을 사람들은 모른다. 주최 측은 공연 한번에 드라마틱한 효과를 기대한다. "앞에 분위기가 좀 무거울 것 같아, 눈썹씨가 발랄하게 분위기를 바꿔주셨으면 해요." 라고 요청주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의 분위기도 좀 발랄하게 만들 수는 없었을까?'라고 속으로 생각하지만 어쨌든 분위기 바꾸는 게 나의 역할이 맞기에 어떻게 신나게 해볼까 고민을 한다. 다행히 사람들에겐 기타치며 노래하는 뮤지션에 대한 멋진 선입견이 있어 그 분위기를 타고 재롱을 떤다. 관객들은 즐길 준비를 하는데 내가 쭈구리처럼 굴면 안되지 않나! 그래서 나는 또 나대로 본투비 스타인 척 말하고 노래한다.

반햇나 모임에서는 세상 멋진 저 언니들이 있으니 나는 좀 덜 멋있어도 될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랜시간 기타와 피아노를 가까이 하면 저렇게 되는구나. 사람들 눈에 들어보려 용쓰는 시간이 지나가면 저렇게 힘을 빼고도 멋있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햇나 모임도 벌써 10년이 되었단다. 몇몇 언니들은 음악을 한지 20년이 되었다. 언니들이 너무 동안이라 나이가 잘 가늠이 되지 않지만 나와 꽤 나이 차이가 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대부분 수줍수줍 조용한 성격이신데도. 서로 음악을 들은 후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대화에 어색함이 없었다.


흔한 실손보험 하나 들지 않았지만 언니들이 가까이에 있다 생각하니 벌써 배가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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