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른 채 잠만 잤다. 눈을 뜨면, 급한 연락과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느릿느릿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졸음이 내려앉았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잠들어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나흘을 자고 나니 겨우 일어나 앉을 정도가 되었다. 한낮은 아직 여름인데 아침저녁으론 겨울이 느껴지는 날이 오면 이렇게 한참을 앓는다. 그리고 눈을 뜨면, 따스한 차가 몸에 스미는 계절이 선뜻 다가와 있다.
비행기를 타고 온 택배 박스에서 작은 캔 하나를 꺼낸다. 녹진하게 말라버린 몸에 장미향 가득한 홍차를 부어주기 위해서. 천천히 차를 끓이고, 한 모금 크게 마신다.만개하는 장미꽃처럼 일순간 모든 감각이 깨어난다.
현실보다 꿈에서 답을 발견하는 일이 내게는 더 쉽다. 복잡하게 얽히고 쌓인 고민들을 끌어안고 긴긴 잠을 자다 보면,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그 사이 어딘가에서 둥실 답이 떠오른다.
이번에는 지나가버린 일들을 많이 생각했다. 놀랐던 점은 이미 저질러버린 일들에 대해서는 - 특히나 그게 명백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 후회의 시간이나 과정이 그리 길지 않았다는 것.잠깐의 자책과 아쉬움을 남기고, 발길질 몇 번에 힘없이 밀려나 버리고 마는 정도였다.
반면 하지 못한 일들은 아주 오랫동안 생각이 난다. 망설이다가, 고민하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마음을 접었던 일들은 후회가 길다.
가능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랬다면, 저랬다면, 하는 그림들을 그리고 또 그려보게 된다.감정들도 되돌이표를 따라 한없이 맴돈다.
다행히도 일단 뭐든 경험해 보자는 주의라서, 기회를 놓쳐 후회하는 일은 드물다. 다소 경솔하게 결정해 버릴 때도 있지만 그 어떤 경우든 삶과 사람에 대해 뭐라도 배웠다면 손해는 아니라 생각한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얼른 모든 걸 버리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나에게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귀하고 소중한 자원은 다른 무엇도 아닌 '시간'이고, 후회하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버리고 만다.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다가 더 많은 것을 잃지는 말자. 그렇게 생각하니 차분하고 고요한 평안이 마음에 찾아왔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조차도 후회의 색으로 물들지 않게. 지켜내는 일은 온전히 나의 책임이다.
+) 귀한 분께 선물 받은 이름 엽서. 노아의 '아'가 어쩐지 'ㅎ'으로 보인다. 살짝 뒤집으면 '놓'이 된다. 놓아, 놓다. 어제를 놓아주는 일은 오늘을 맞이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