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는 사람 Jul 15. 2023

시작이 어려운 이유

시작 없이 지난날에 대하여

완료주의자가 되겠다 다짐하고, 두 번째 글을 쓰기까지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지금까지 시작하지 못하고 생각만 하다가 끝난 일들이 많았다. 무엇인가 하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시작하지 못한 날들에 나는 무엇을 했을까. 그 어떤 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 보낸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문제는 퇴근과 동시에 시작한다. 퇴근하는 길에 있는 헬스장이 문제다. 일부러 퇴근길에 들릴 수 있는 헬스장을 등록했다. 동선의 효율성을 고려하여 퇴근과 동시에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하지만 기왕이면 집에 있는 개인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시작하고 싶어 진다. 집에 가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지하 주차장에 주차된 차를 타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 끝나고 다시 차를 타고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아무래도 우선 집에 가는 게 좋겠다. 


그렇게 헬스장을 지나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문제가 또 생긴다. 밥을 밖에서 먹고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소화시키고 운동을 가려면, 아무래도 밖에서 먹고 집에 들어가야 개인정비 시간과 운동시간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 운동 가기 전에는 무엇을 먹는 것이 좋을까 고민을 시작한다. 집에 오는 길 떠오른 많은 후보 중에 어떤 것도 고르지 못한 채 현관문 앞까지 와버렸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는 동시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기왕 집에 들어와 버린 거 밥을 먹고 씻는 것이 좋을까. 개운하게 씻고 밥을 먹는 것이 좋을까. 운동하고 와서 씻는 것이 좋을까. 무엇이 베스트일지 고민이 시작된다. 우선 의자에 앉는다. 배달어플을 켜고 적당한 음식을 골라본다. 실패다. 적당한 음식을 고르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간다. 


집에 도착해 의자에 앉아 있자니 하루의 피곤이 몰려온다. 수면욕이 식욕을 이기려고 하고 있다. 우선 저녁메뉴는 누워서 골르는 것이 효율적이겠다. 손 씻고 옷만 갈아입고 살짝 누워본다. 배달 어플 화면 위로 손과 눈이 바쁘게 움직인다. 급격한 피로가 몰려온다. 집에 오는 길에 한 많은 고민들로 인해 머리를 조금 쉬고 싶어 진다. 손가락은 유튜브를 누르고 시선은 핸드폰 화면을 정처 없이 떠돈다. 


이런! 멍하니 누워있다가 식사 시간을 놓쳤다. 잠을 잔 것도 아니니 피로가 풀린 것도 아니다. 운동을 가기 애매한 시간이 되었고, 다른 무엇을 시작하기에도 애매한 시간이 되었다. 냉장고에 있는 단백질 셰이크를 먹는다. 오늘 하루도 애매하게 있다가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다. 저녁 11시가 되어서야 씻기 시작한다. 나는 약 다섯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하였는가 생각한다.  오늘도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구나. 기분이 울적해진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날, 나는 꽤나 많은 고민들을 하며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여러 번의 시작을 한다. 우리 뇌는 단순해서 상상 속의 시작만으로도 의지력을 상실하는 것이 분명하다. 


오늘의 글은 상상으로 시작하기 전에 책상에 노트북을 올리고 의자에 앉아 타닥타닥 쓰기 시작했다. 완료주의자는 상상으로 의지력을 상실하기 전에, 마음속으로 '액션!'을 외치면서 동시에 시작하고 '컷!'을 외치며 동시에 끝내야 한다. 이상 컷!





 





작가의 이전글 게으른 완벽주의에서 완료주의로 변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