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걸음

by 시인 화가 김낙필

O 걸음


우뚝 서있는 벌판

철지난 계절의 끄트머리에서

밤도깨비 불이 날아다녔

허수아비는 품에 비수를 품고

까마귀 어깨를 기다렸다

서리발 성성한 노인이 눈밭 뚝길에서 피리를 불자 동편 늪지대로 까맣게 날짐승들이 날아갔다

해안선으로는 언 바다에 폐선들이 늘어서 있었고

시화호엔 물이 줄어들어 오염된 고기들이 먼 바다로 도망쳐 나갔다

괭이 갈매기가 떠난 포구는 고즈녁했다

모든 것들이 멈춰버린 시간에는 전망대에 걸린 종이연이 혼자 춤을 춘다

걸음이 혼자 팔방 놀이를 하다

핓빛 노을에 잠깐 걸음을 멈추고 긴 호흡으로 떨어지는 해의 소매를 잡는다

아 걸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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