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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화가 김낙필 Aug 27. 2022

가      방





가방이 침실을 잠식했다

깜짝 세일이나 충동구매로 사들인 여행용 가방들이 줄줄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자리만 그득 채울 뿐 제 기능이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 역병으로 나라마다 문을 걸어 닫고 족쇄를 채운 지 삼 년이 지나갔다

여행업 종사자들과 이태리 소매치기는 덕분에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나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좋아한다

그러나 삼 년째 발을 묶고 있다

받아주는 나라가 없었다

그동안 줄곳 떠날 가방만 괜히 사들였다

나와 가방의 신세는 먼지만 쌓여갈 뿐 행색이 무참했다


요즘 들어 괌이나 사이판이나 푸꾸옥 야자수 해변에서

밀려오는 물결소리를 들으면 온종일 누워있는 꿈을 자주 꾼다

꿈이라도 꾸니 좋았다

옥빛 물결이 들락거리는 망망대해가 한없이 좋았다


하나

나의 여행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괜시레 가방 숫자만 늘어났다

어쩌자는 얘기인가

길바닥에 내놓고 가방 전문 벼룩장터라도 꾸려야 할 판인가 보다


여행용 캐리어가 10개

백팩이 8개

등산용 가방이 9개

소형 멜빵 가방이 7개

소형 슬링백이 9개

초대형 돌돌이 가방이 2개

보스턴 백이 5개


이중에

한 번도 사용 못한 물건이 절반이 넘는다

결론은

충동구매라는 병을 시름시름 앓고 있음이다


가방만 남았고

탑 여행사도 하나도 모두도 노랑도 직원들이 다 떠나버리고 망했다

나도 망해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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