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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화가 김낙필 Jan 20. 2024

수   은   등





우리 동네는

지은 지 오래된 주공 아파트라

늬엇늬엇 저녁 으스름엔 노란 가로등이 켜집니다

베란다 창에 기대어 밖을 보면 몽환적인 풍경입니다


해가 저물고 점점 가로등이 밝아지면

어둠은 짙게 깊어 갑니다

눈이라도 내리는 밤이면 수은등이 더욱 은은해 지지요


이제 재 건축으로 곧 동네가 다 허물어지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입니다

살구, 사과, 감나무, 모과, 자두, 대추, 능금나무가 뿌리째 뽑여 나갈 판이지요

수십 년 자란 메타쉐콰이어, 팽나무, 자귀나무, 단풍나무, 잣나무, 소나무들도 

모두 잘려나가 버리겠지요


그리고 높다란 팬트하우스가 들어설 겁니다

그러면 노란 수은등은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겁니다

트롯 가수 김연자의 '수은등' 노랫말 속으로남을 겁니다


오늘 저녁

오래오래 창가에 기대어

깊어가는 수은등을 바라봅니다


라일락 향기가 일품이고

과일이 주렁주렁 열리던 우리 동네는

역사 속으로 조용히 사라져 갑니다


옛 것들을 모조리 부수고

빌딩과 아파트만 열심히 짓는 우리는 우매한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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