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건너간 사람

by 시인 화가 김낙필



오늘은 나를 건너간 사내가 보고 싶다

그 사내가 한 말도 기억난다

'지금은 뜨겁지만 훗날 식어도 우리 서로 원망하지 말기'

그리고 이십 년이 흘러갔다


밤이 오자 광안대교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다리 밑으로 유람선이 떠 다닌다

불꽃으로 볼이 붉어졌다

오늘,

화려한 불빛들이 밤을 밝힌다

어둠 속 수평선이 보이는 곳에 그 사내가 웃고 있다

세상 끝까지 나를 데려다줄 것 같던 사내는 어느 날 바람처럼 사라졌다

생사도 모른 채 기억 속에만 살아있는 사내

태풍도 허물지 못한 사내가

밤바다에 둥둥 떠 다니고 있다


허리를 풀면 둔덕 사이로

노를 저어가던

바다내음 가득한 오륙도 선착장에서

물질해 잡은 전복이랑 해삼이랑 뿔소라를 안주삼아 대선소주를 열병씩이나 까던 짧았던 시간


사라진 시간을 지키는 그 사내는 기억하고 있을까

청사포, 용궁사를 돌아 나와 달맞이길

사라진 언덕 아래 사내는 아직도 담배를 피우며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을는지

운명선을 같이 탔던 우리는 길동무였지만 사연은 묻지 않았다

귀로에서 만난 그저 좋은 친구였다


오늘은 그 남자가 보고 싶다

바다가 한없이 뒤척일 때 나를 위로했던 사람

죽음을 불러내 무작정 강가를 걸을 때 손을 잡아준 사람

하룻밤쯤은 뜨겁게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



내가 건너가고 나를 건너간 기억들

오늘 밤바다를 보며

먼 데서 오는 뱃고동 소리를

듣는다

소리는 그 남자의 발자국 소리다

볼을 타고 흐르는 강물이 그날처럼 따듯하다


무모했지만 아름다웠던 나의 사내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