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시인 화가 김낙필
Nov 18. 2024
당신은 여름 한 복판에서 와서
가을을 잘 몰라
그래서 가을 남자도 몰라
열정은 무더위처럼 식지만
가을은 쓸쓸하고 아름답지
식을 줄은 모르고 물들 줄만 알지
그래서 당신은 가을 남자가 얼마나 섹시하고 깊은 줄 모를 거야
당신은 뜨거운 것만 좋아하지
슬픈 것들의 비애를 모르지
쓸쓸한 것에 물들면 약이 없어
상처만 옹이 되어 남는 거지
가을은 그런 거야
가을은 두 얼굴의 계절인데
당신은 현실적인 사람이라
하나밖에 모를 거야
난 너무나도 가을 같은 두 얼굴의 남자야
가을은 너무 쓸쓸해서 차라리 황홀하거든
석류를 입안 가득 깨물 때처럼
그 달콤함과 청량함이 환장하게 좋거든
가을은 내게
근심이었다가
황홀이었다가
옹이 같은 상처였다가
들판 허수아비였다가
갈까마귀 우는 저녁노을이었다가
봉선화 연정 같은 사랑이었다가
내내 잊지 못할 그날의 정사였음을
당신은
내 생애에 거룻배 같은 사람이었어도
가을이면 찾아오는 가슴 찌릿한 연서이길 바래
그렇게 곱게 물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