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離住
30년 살아온 집을 떠난다
이주가 발표된 후 주변 전세가 난리가 났다
나는 태연하다
물건이 없으면 먼 변방으로 가면 되겠지
대중교통이 얼마나 잘 돼있는가
사방팔방 다 뻗쳐있는데 걱정이 없다
문틈이 벌어져 사계절 바람이 들고나던 집
첫 분양 때 들어와 장화 없이 못 살던 곳이 번화한 도회지가 됐다
떠나자니 심란하다
늙어 재건축해서 새집에 살면 뭐 하나
새 살림 차리는 것도 아니고
몸 편히 누울 곳이면 족한 나이인데
재건축 바람이 불고 막바지에 정든 아파트에서 쫓겨난다
짐을 싸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난다
40년 동안 쌓인 잡동산이들, 쓸모없는 것들 천지다
버리자니 아깝지만 쓸 일이 없는 것들이다
건질 것은 몇 가지 안 된다
떠나긴 싫지만 주민들 의사 투표로 결정된 재건축이다
집 가치가 올라간다고 달라지는 게 뭔가
어차피 쓰고 사는 집은 하나뿐인데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속이 안 좋다
어디로든 가서 5년을 떠돌며 살아야 한다
이주, 이건 쫓겨나가는 기분이다
과실수 과수원으로 유명했던 곳
과수원은 하나도 안 남고 하늘 높은 아파트만 빼곡하게 남았다
이사 간다
삼십 년 몸을 뉘었던 골방을 떠난다
이 집, 이 골방을 영영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