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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아빠! 우리 이사 간다

재건축, 離住

by 시인 화가 김낙필



30년 살아온 집을 떠난다

이주가 발표된 후 주변 전세가 난리가 났다

나는 태연하다

물건이 없으면 먼 변방으로 가면 되겠지

대중교통이 얼마나 잘 돼있는가

사방팔방 다 뻗쳐있는데 걱정이 없다


문틈이 벌어져 사계절 바람이 들고나던 집

첫 분양 때 들어와 장화 없이 못 살던 곳이 번화한 도회지가 됐다

떠나자니 심란하다

늙어 재건축해서 새집에 살면 뭐 하나

새 살림 차리는 것도 아니고

몸 편히 누울 곳이면 족한 나이인데


재건축 바람이 불고 막바지에 정든 아파트에서 쫓겨난다

짐을 싸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난다

40년 동안 쌓인 잡동산이들, 쓸모없는 것들 천지다

버리자니 아깝지만 쓸 일이 없는 것들이다

건질 것은 몇 가지 안 된다


떠나긴 싫지만 주민들 의사 투표로 결정된 재건축이다

집 가치가 올라간다고 달라지는 게 뭔가

어차피 쓰고 사는 집은 하나뿐인데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속이 안 좋다


어디로든 가서 5년을 떠돌며 살아야 한다

이주, 이건 쫓겨나가는 기분이다

과실수 과수원으로 유명했던 곳

과수원은 하나도 안 남고 하늘 높은 아파트만 빼곡하게 남았다


이사 간다

삼십 년 몸을 뉘었던 골방을 떠난다

집, 이 골방을 영영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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