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귀꽃 필 무렵

by 시인 화가 김낙필



창밖 뒤뜰에 이맘때면 피던 자귀꽃

무희들의 부채춤을 연상시키듯 연분홍색 부채 닮은 꽃


나는 떠난다

내가 떠나고 난 후에 자귀나무도 수명을 다한다

재건축으로 이주가 끝나면 무자비한 포클레인이 와서 집이며 나무들을 뿌리째 뽑아버릴 것이다


자귀는 35년의 수명을 다하고 사라질 것이다

행여 잔뿌리라도 남아서 그 터가 화단이 된다면 싹이 다시 터 피어나길 바란다

그렇게 다시 화려한 부채춤을 추기 바란다


이맘때 창문을 열면 한껏 달려와 품에 안기던 자귀꽃을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인간이 심고 인간이 송두리째 뽑아버리고 마는 게 인간 세상이다


저 뜰악에 살던 죄 없는

살구나무 라일락 감나무 모과나무 자두나무 앵두나무 산사과나무 산수유 매실 뽕나무가 다 사라질 판이다

재 건축이란 무서운 흉기가 모조리 밑동을 잘라버릴 것이다


오늘 창밖 자귀나무를 무심히 보며 말을 건넨다

그동안 부채춤 잘 보고 간다

끝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안녕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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