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은 휴일날도 불러내
<반공관> 만드는 학교일에 그림이나 브리핑 챠트 만드는 일을 시키셨다
점심때면 꼭 배다리 중앙시장 골목 순대국집에서 국밥 두그릇에 소주한병을 시키시고 내게 말했다
"너는 학생이니 술은 한잔이라도 줄수없다 내가 다 먹으마" 하시며 한병을 꼴까닥 다 마셔 버렸다
처음 먹는 순대국은 창자 구린내와 허연 비게덩이 때문에 곤혹스러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이리저리 골래내며 허기를 달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야 이눔아야 골래낸 비게덩어리 창자 다 내 그릇에 넣거라! 왜 그 맛난 것을 다 골라내누" 하시며
골라낸 것들을 몽땅 가져가 맛있게 다 드셨다
한 삼개월 함께 작업하면서 맨날 순대국밥을 먹자니 정말 고역이었다
감히 꼬장 꼬장하기로 소문난 좁쌀영감 식성을 거역할수도 없고 속으로 그져 원망만 했다
담임 선생님은 이미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시지만 그때 그 순대국밥이 너무 그리워 시장통을 찾아봤지만 그 뚱뎅이 아줌마 국밥집은 있을리가 만무 했다
그 꼬리꼬리하고 허연 비게덩어리 순대국밥이 가끔 그립다
女商 재직하실때 안나들 화장실 밖으로 싼 똥을 직접 손바닥으로 밀어 구멍으로 치웠다는 전설이 구전되는 우리들의 담임 '한주숙' 선생님
우리반은 "텍사스" 반이라고 명명될만큼 꼴통들만 모여있는
대책없는 반이었지만 가신후에도 꼴통들은 선생님을 많이 그리워 했다
그 꼴통들이 이제 다 늙어 꼬부라져 허연 할배들이 되었다
선생님이 사주시던 시장통 순대국밥 맛은 사라져 이제 다시 되찾을수도 없다
그 꼬리꼬리하고 진한 구수한 국밥
담임 쫍쌀영감 한대감 선생님도 함께 한시절이 그렇게 덧없이 갔다
<나와 마누라의 담임선생 였던 샘은 결혼식 주례를 서셨고 싸우지말고 잘살라 하셨건만
우리는 평생을 싸우며 살았다
그 惡妻 때문에 결국 나는 惡夫가 됐고 詩人이 됐고 畵家가 되었다ᆢ>
오늘 평생 처음으로 혼술을 했다
앞으론 자주해야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