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여전히 苦海다

그늘

by 시인 화가 김낙필


말끔한 아저씨가 전철역사 쓰레기통을 뒤지더니

비닐봉지에서 빨대가 꽂힌 캔음료를 꺼내 들고 출구 쪽으로 간다

가다가 계단 앞에서 멈추더니 캔음료를 마신다

제법 남아있는지 두세 번 나눠 마셨다

그리고 빈 캔을 버리고 유유히 출구로 나가셨다


옛날 젊었을 때 봉천동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있었는데

밤 11시쯤 됐나

창밖으로 길 건너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가씨를 발견했다

매무새를 보니 명품 옷에 샤넬백, 명품구두를 신고 있었다

모델처럼 화려한 팔등신 미녀다

그녀가 스시집에서 쓰레기통에 버린 음식물 찌꺼기를 꺼내 먹고 있었다

너무 황당해서 잘못 본 건 아닐까 유심히 살펴봤다

한참 동안 수그린 채 배를 채우더니

아가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 갈길로 가 버렸다

충격적인 장면이라 잊혀지지가 않는다

다음날 동료들에게 말했더니

그런 경우가 가끔 있다고들 했다

치장은 명품으로 했으나 빵하나 제대로 사 먹을 수 없는 된장녀들이라고 했다


아직도 복지의 사각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해외여행에 명품에 먹고 마시고 차고 넘치는 세상이지만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니 황당하다

풍요의 그늘 뒤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백성들이 아직도 현존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황당한 일들이 아닌가

그때 그 불쌍한 사람에게 밥 한 끼 사줄 걸 하는 후회를 내내 하기도 했다

세상은 요지경이라 했다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가 않다

세상은 여전히 苦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