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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난 남자와 헤어지다

by 시인 화가 김낙필



저녁 강아지 산책길에서 만난 인연으로 '시추'와 '포메라이안'의 개 주인이 사귀기 시작했다
강쥐와 함께 만나다가 오로지 사람끼리 만난지 8년째가 됐다
우리는 왠지 오히려 반려견의 사랑만큼 열렬하지 못했다
차마시고, 술마시고, 영화,연극보고, 문화역사 탐사여행도 하고 남들보다 부지런하게 만났다
익을대로 익은 남녀지만
모텔은 커녕 남자는 손한번 그 흔한 뽀뽀조차 해 오질 않는다
일부러 오솔길 혹은 후미진 골목으로 길을 유도해도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럼 내가 먼저 달려들면 될텐데 여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질 못했다
결국 지지부진한 만남은 합의 결별로 이어졌다
남자는 이별 통보에도 전혀 당황하지않고 흔쾌히 받아 들였다
8년만에 그렇게 그남자와 헤어졌다
5년쯤 지난 어느 가을날 여고 동창생 결혼식에서 신랑측인 그 남자와 조우했다
피로연 회동자리에서 서로 눈을 맞췄지만 이남자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잔잔한 미소로 화답했다
물론 우린 서로 손 한번 안댄 순수한 사이니까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난 여름 동창회 자리에서 그 남자의 색시인 친구와 우연히 자릴 함께했다
"얘 네 남편 잘하니?"
"뭘ᆢ?"
"있잖아 그거ᆢ애가 벌써 셋이라며?"
"애는 별걸 다 묻는다 "
"아주 너무 자주 달라붙어서 밤마다 베개들고 이방저방 도망 다니느라 개고생 한다"
"너무 잘해ᆢ그거 가르치는 기술 학원 다녔나봐ᆢㅋㅋ"
"뭐래??ᆢ그 무지랭이 고자같은 놈이 그렇게 기술이 좋은데 나랑은 왜 그랬던거야"
중매로 만났지만 서로 못죽어서 안달하며 깨가 쏟아진다니 기도 안찬다
옥석을 내가 못 가린건지
내가 성적 매력이 영 없는 여자 였던건지 알수가 없다
나는 오늘도 강쥐와 천변을 오가며 산책해 보지만 언놈하나 거들떠도 안 본다
벌써 그놈과 헤어진지 어언 10년이 지나 내 나이 지천명 사십을 넘어섰다
그때 어떻하던지 그놈 안다리를 걸어 덮쳤어야 했는데
죽 쒀서 남주고 말았다는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내 강쥐 '포메라이안'도 어느새 노년에 접어들고 있다
아~ 씨부럴 이놈의 팔자는 여튼 재수 더럽게도 없어
하긴 12년 열애끝에 결혼한 아빠도 30년 각방쓰다
65세에 이르러 갈라 서더라만
걔네라고 별수 있겠어
이삼년 깨 볶다가 각방 쓰겠지

그놈과 헤어진 후로는 뭔가 되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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