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신음소리를 내며 흐느끼고 있었다
헝클어진 반백 긴 머리가 굽은 등 뒤로 흘러내려 있었다
천변 산책로 청계 계곡에서 선바위 기점으로 흘러드는 여울 목교 밑 물이 지나가는 길목 콘크리트 난간ᆢ
겨우 사람 하나 지나갈만한 턱에 앉아 등을 돌리고 그가 울고 있다
행색이 추려한데 노숙자는 아닌 듯싶고 무슨 사연이 있길래 다리 밑에 숨어 울고 있을까
왜가리 한 마리 후두득 청계 계곡 쪽으로 날아오른다
정희는 가던 걸음을 돌려 관악이 보이는 과천 쪽으로 방향을 틀어잡았다
비 온 뒤라 냇물이 일급 수처럼 맑아 잉어 떼들이 투명했다
방금 본 처연한 풍경을 잊으려는 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연주대에 서있는 첨탑 위로는 상현달이 자른 손톱처럼 하얗게 떠 있다
마치 코끼리의 상아처럼 보였다
궁금해서 그 사내에게 우는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다
한 오지랖 하는 내가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중앙동 굴다리 시장에 들러 장을 보고 돌아오는 내내 그 남자의 굽은 등이 떠올랐다
왜가리 같은 사내는 많이 아픈 것도 같아 보였다
정희가 슈퍼에서 소주 한 병과 대구포 안주 한포를 사들고 지하방에 돌아왔을 때 주말 연속극을 시작하고 있었다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어느새 술병 바닥이 보였다
한병 더 사 올걸ᆢ
갑자기 그 사내에게 술 한 병 사다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만사 시름이 깊을 때는 술보다 더 좋은 약이 있을까
정희는 그렇게 술을 배웠다
친구 연주가 죽기 전에는 늘 함께 술을 마셨다
동병상련이라고 처지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연주는 담낭암 판정을 받고도 술을 끊지 못해 결국 명을 더 재촉하고 말았다
나도 친구의 좋아하는 술을 말리지 못했다
어차피 떠날 몸 조금 늦추겠다고 그 좋아하는 술을 마다하게 하겠는가
친구를 보내고부터 혼자 술을 마신다
술이 결국 연주 같은 친구가 됐다
언젠가 술잔을 한숨에 입에 털어 넣으며 연주가 말했다
"정희야, 내가 가고 나면 너는 누구랑 술 먹을래ᆢ 나는 그게 제일 걱정이다"
"미친년, 네가 이렇게 시퍼렇게 눈뜨고 있는데 뭔 시답지 않은 소리야"
그렇게 숨기고 있던 시한부 지병을 털어놓고 내 앞에서 처음으로 울던 연주ᆢ
참 서럽게도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천변 다리 밑 사내의 울음과 많이 닮지 않았던가
오늘은 먼저 간 친구가 유난히 밟히는 나만의 혼술 시간이다
갑자기 사내가 그곳에서 하염없이 울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밤을 새우다 잠든 연주의 알몸은 마치 코카 콜라병처럼 완벽한 라인을 갖추고 있었다
정희는 질척이는 몸을 일으켜 술을 사러 나갔다
그 여울목 다리 밑 사내에게 가져다주고 울음의 사연을 물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밖은 어느새 사위가 어둑어둑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지하계단을 대문께쯤 올랐을 때 다리가 휘청하며 중심을 잃고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갑자기 빈속에 먹은 술기운이 전신을 점령하고 있었다
가무룩히 의식 저편으로 사내의 굽은,
흐느끼는 등이 보였다
그리고는 마치 무슨 영화 엔딩 자막처럼 무수한 나비들이 코 앞으로 날아다녔다
거기서 필름은 끊기고 말았다
멀리서 연주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기다려 연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