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행인

by 시인 화가 김낙필



나는 보도 위의 행인
사막 위를 걷는 낙타보다 느리다
막걸리 한잔에도 반쯤은 눈이 감기고
수심은 없어도 휑덩그레 남겨지는 그림자처럼
몸은 파도처럼 출렁거리고 생각은 먼 섬이 되는


갓 볶아낸 커피 향이 아닌
유효기간 벌써 지난 쓰디쓴 원두 알갱이
절정이 한참 지난 그렇고 그런
원주민 동네 사람

정갈하지도 못하고 반짝이지도 않은 시간
그 속에서 아이도 되고 어른도 되는 유치원 유희처럼
풍금소리 오래된 정원에서 잠이 드는 목자
연중 성탄 미사에는 꼭 참석하는 나이롱 신자
성자께서 특별히 용서한 꼴통 냉담자
별도 품고 달도 품고 바다도 품을 줄 아는 행려자
황금 마차의 방울 소리가 들리면
연미복을 입고 나서는
반쯤은 고삐 풀린 망아지

나는 호박넝쿨이 변한 엑스트라
신델레라 아가씨 마차의 마부
주술사의 지팡이 한방에 사라지고 나타나는
수많은 행인 중의 하나
포졸 I, 머슴 II, 걸인 III...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세상 사람들은 축복의 노래를 부르지만
베개 맡 아득한 종소리가
총소리처럼 들리는
외로운 구도자(求道者)...(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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