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꽃물 들이기

by 시인 화가 김낙필





먼저 떠난 작은 누이가

이 맘 때면 봉숭아꽃 따다가 명반 섞어 절구에 빻아서

손톱마다 비닐조각으로 감싸서

바느질 실로 꽁꽁 매 주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울 밑에서 봉선화, 채송화, 백일홍, 다알리아, 칸나, 분꽃

이런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났는데

지금은 볼 수가 없다


화려한 꽃들만 꽃이 아닌데

순박하고 다정스러운 이 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이 많으신 경비 아저씨가

옛날 분이신지라 아파트 화단에

봉숭아 꽃을 심으셔서

옛날 생각하시는 분들이 너도나도 따 가셨다

내일 모래쯤이면 너도나도 손톱에 봉숭아 꽃물로 물 들을 것이다


손톱이 자라서

깊은 겨울 지나고 내년 봄쯤이면 초승달처럼 끄트머리만 남겠지

그동안은 누님 생각하며

봉숭아 꽃물 손톱을 보며 지낼 수 있다

각박한 세상에서 봉숭아 꽃물이 추억을 실어다 주는데

어느새 삶은 강물 같이 흘러서

멀리도 와 있다


하룻밤 자고 나면 고운 꽃물이 들겠지

시골집 뒤뜰 장독대 옆에 곱게 피던 꽃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고 설렌다

아, 그리움이여 사랑이여

내 나이가 얼만데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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