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켜는 저녁

by 시인 화가 김낙필





세월이 무상하게 흘렀다

촛불 하나 밝히는 일처럼 경건하고 고요하게

부서지는 영혼

언젠가 젊은 내가 거리를 방황하고

혼자라는 게 두려워 숨던 황야에서

인생이라는 과제는 결코 쉽지 않았다


번 죽을 번하고 살아난

선택의 순간은 운명이었다

전투병의 임무를 마치고 퇴역 군인처럼 낚싯줄을 드리우면

강물이 나를 자꾸 바다로 끌고 가려고 한다

해거름 저녁노을이 붉어도

내 마음은 간데 없이 허전하다

그래 촛불 하나 더 켜자


오늘은 어디에 낚싯줄을 던져볼까

강을 지나 바다로 가볼까

바다 끝까지 가볼까

지구 반대편 카리브해까지

노 저어 가볼까

바오바브나무 아래 지는 석양을 보러 갈까


언젠가 어디서라도 좋을 상상의 나래를 편다

맞은 적 없는 예감은 늘 나를 외롭게도 했지만

촛불 하나 켜는 일이

켜켜이 쌓인 영혼의 먼지를 털어내는 소중한 일이 되길 빈다


자, 이 저녁

촛불 하나 더 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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