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무룩 한 어느 여름
"세정사" 앞뜰 개여울에 핀 물봉선화를 함께 바라보던 그대
찌르레기 시끄럽던 요사체 퉷마루에 앉아 부채질하며
수박 한쪽 달게 먹던 시간
수박을 점심공양처럼 내어주던
보살님은 아직도 거기 계실까
아무도 없는 절간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무명 객들에게
아랑곳 않고 시절 얘기를 함께 나눠준 그이는 어떻게 거기까지 왔을까
싸우며 사랑하며 용서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반 평생 이건만 물봉선화는 선하게도 피었구나
"수종사" 가는 길 잘못 접어든 이름 모를 절간에서 반나절 남짓 머무는 시간 동안
시절 인연처럼 오랜 친구처럼 대해준 보살님의 얼굴은 지금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물봉선화와 누군지 가물가물한 묘령의 여인과 인자했던 그 보살님을 추억할 뿐이다
서너 번의 생을 다시 돌아와 핀 물봉선화 닮은 이들을 만나 부채질하던
온화하고 편안했던 그 여름의 기억이
왼쪽 가슴으로 들어와
아직도 긴 여울목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