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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보다 별장

양양 세컨하우스 이야기 - 아파트 계약 편

by 민지숙

작년 4월 이맘 때쯤이었다. 바닷물은 아직 찬데 해는 따뜻해서 모래밭에 앉아 맥주를 먹기 딱 좋은 날씨었다.

서울 원효동 골목의 까페 두화당 테이블에 앉아 강원도에 있는 부동산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포털 사이트의 부동산 매물 서비스에 올라와 있는 아파트를 검색한지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가격이 진짜인지 물었고, 한번 가서 구경할 수 있는지 물었다. 집 정도는 여러번 사본 적 있는 사람인 것처럼 굴고 싶었지만, 초짜인 게 다 티가 난 것 같다. 강원도 양양이 속초 위에 있는지 강릉은 또 어디에 있는지 헷갈렸으니까.


다행히 아파트를 보여주겠다는 친절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바닷가에서 5분거리에 있는 한동짜리 아파트였다. 내가 아는 양양의 지명은 '죽도'와 '남애'가 전부인데 '하조대'에 있다는 말이 조금 걸렸지만, 보기만 할 건데 뭐 어떤가 싶었다. 강원도에 와서 살건지, 신혼부부인지 몇가지 질문에는 어물쩍 대답을 피했다. 레이를 빌려 양양 고속도로를 탈 때까지도 내가 그 집을 사게 될 줄 몰랐다. 양양이란 곳은 스물 아홉 평생 딱 2번 와봤고, 어설프게 물장구를 치다가 힘들면 기름진 햄버거에 맥주를 마신 게 경험의 전부였다.


아파트는 방 하나, 거실 하나의 아주 보통의 집이었다. 어느 중년의 아저씨 혼자 쓰던 곳이라고 했는데 어두운 갈색의 커다란 침대 하나가 거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낡았고, 그리 깨끗히 청소되지 않은 모습에 이쁜 구석은 솔직히 없었다. 베란다에서 바다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산에 둘러 싸인 언덕에 혼자 서있는 아파트는 '별장' 느낌 그대로였다. 높은 언덕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내려가는 길엔 조금씩 수평선이 보인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바다와 가까워지는 느낌이 좋았다. 동남아 해변에서나 느낄 수 있는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설렘이 있었다.


하조대 서프샵 '원서프'에 들렀던 것이 먼저인지, 아파트 내부를 구경한 것이 먼저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아파트를 사게 된 데는 원서프 사장님 커플과의 만남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니 누가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은지 모르겠다. 생각보다 4월의 해변가는 뜨거웠고,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실 만한 곳을 찾다가 들어간 곳이었다. 죽도 해변의 서핑샵보다 넓직하고 여유로웠다. 하조대가 죽도보다 먼저 서핑이 시작된 곳이고, 방파제를 따라 파인 해변은 파도가 작아 초보 서퍼들이 연습하기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주말 저녁이면 홍대 이태원 저리가라 왁자지껄하게 변하는 죽도보다 훨씬 평화로워보이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두분 사장님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아둔 돈은 하나도 없었다. 대출이라는 위험하지만 편리한 제도가 있지만 월세방에 살고 있으면서, 회사에서 250킬로미터 떨어진 아파트를 산다는 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저 바닷가에 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포털 사이트에서 쉽게 매물을 찾을 수 있었고, 내 통장 잔고를 확인할 수 없는 부동산 아주머니가 선뜻 집을 보여주었다. 그 동네 사람들은 좋아 보였고(이야기를 해본 건 2명 뿐이었지만), 올해 들어 우리나라가 북한과의 사이도 좋아지니 강원도 부동산은 오를 것만 같았다. 그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뿐이다.


지금 당장 별장을 사야만 하는, 그럴듯한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모든 일은 지나친 상상력이 문제다. 단 하나의 은유로 사랑은 시작된다. 눈앞에 떠오른 이미지들이 리얼하면 리얼할수록 위험하다. 하조대 바닷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10평짜리 아파트를 봐버린 뒤로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그곳의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돌아올 봄까지 모든 계절의 풍경이 눈으로 본 것처럼 또렷하게 새겨졌다. 양양에서 서울로 돌아온지 2시간만에 적금을 하나 깼다. 부동산 아주머니에게 계약금 3백만원을 보냈다. 그렇게, 집보다 별장을 먼저 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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