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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보다 별장 3

인테리어 편 - 놓고 싶은 것만 놓기

by 민지숙

도배와 벽지가 시작이었다. 무조건 흰색 바탕에 장판은 가장 저렴한 것중 밝은 색으로 골랐다. 선택지가 몇개 없으니 결정이 빨랐고 낡은 가구들이 빠진 것만으로 집은 새것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옛날 아파트식 갈색 몰딩은 도배 장판 아저씨의 센스로 흰색 벽지로 마무리 되었다. 전화로 업체를 찾고, 주말에 한번 만나 색과 요구사항을 이야기하자 며칠 사이에 작업이 시작됐다. 멀리 서울에서 강원도 집을 맡기니 불안한 마음에 아저씨께 아이스크림 기프티콘을 보내며 잘 봐주십사 인사를 했다. 그 덕분인지 결과는 아주 깔끔했고 만족스러웠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친절한 아저씨는 그날 오후에 완성된 집안의 곳곳을 사진으로 찍어 확인시켜주었다. 문제의 시작은 화장실 공사부터였다.


타일도 변기도 세면대도 모두 바꿔야했다. 화장실만큼은 모든 것을 바꾸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름이 있는 인테리어 업체들은 열 몇평짜리 아파트 공사를 하러 강원도까지 갈 생각이 없었다. 온라인 샵에서 마음에 드는 세면대며 변기며 마음껏 살 수 있지만 설치는 우리가 알아서 해야하는 문제였다. 타이트한 예산 가운데 예산을 더하자면 한도끝도 없는 첫번째 공사가 시작되었다. 젊은 사장님은 역시나 멀리 서울에 있는 우리들을 위해 기꺼이 모든 변기와 세면대 거울의 사진을 찍어 보내 주셨다. 우리는 마음에 들면서 예산의 허용 범위에 있는 물건들을 골랐고, 그에 따른 견적서가 나왔다.


대부분의 인테리어 공사는 결국 견적서보다 많은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얼마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실제 공사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바싹바싹 탔다.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낼 겸, 우리는 화장실 공사 날짜를 우리가 양양을 찾는 주말로 골랐다. 뜨거운 날에 바닷가에서 맥주를 마시며 놀다가 우리는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을까 집을 한번 찾았다. 젊은 사장님과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아저씨 서너분이 계셨다. 사장님보다 나이가 한참 많아보이시는 그분들은 우리와 계약서를 썼던 사장님을 아들 대하듯 하셨다. 사장님이 주문한 시공내역대로 공사를 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너무나 태연하게 하셨다. 그리고 아들뻘 되는 사장님은 동네 아저씨들에게 혼이 난 듯 어쩔 수 없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사장님이 모든 것을 조율하고 전문가처럼 문제를 해결해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견적서는 몇번인가 고쳐지면서 비용이 추가되었다. 우리가 원치 않지만 집의 구조상 어쩔 수 없이 추가해야 하는 시공도 있었다. 애초에 지역의 업체를 섭외한 이유가 뭐였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젊은 사장에게 언성을 한번 높인 뒤에야 크게 어긋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바뀐 상황에 따라 우리가 원하는 것과 현장에서 가능한 범주가 맞아 떨어지는 지점에서 새 화장실이 완성되었다. 거실과 마찬가지로 하얀 타일에, 호텔에 갈 때마다 탐냈던 해바라기 샤워툴이 설치되었다. 사실 해바라기를 지켜냈다는 데서 화장실 공사의 성패가 갈렸던 것 같다.


그 다음은 거의 이케아가 다했다. 베란다의 작은 공간은 이케아표 나무 타일 몇개로 마치 목재 시공을 한것처럼 바뀌었다. 집에서 쓰던 러그에 이케아표 탁자와 거울 몇가지 소품들이 놓이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몬스테라는 하얀색 조약돌과 그것을 담은 투명한 물병과 어우러져 시원한 여름의 느낌을 더해주었다. 집이 아닌 별장이니까. 우리가 놓고 싶은 물건만 둘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었다. 선물받은 보드게임과 wii게임기를 가져다 두었다. 용산 전자랜드에서 산 커다란 중고 모니터에 케이블을 연결해 영화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옷장이라든가 요란한 주방기구 없이 전자레인지와 미니냉장고, 커피물을 끄리는 전기포트가 전부였다. 그걸로 충분할 수 있었던 건 이 공간이 가진 특별한 용도 때문이었다. 우리는 인생의 가장 여유로운 시간만을 여기서 보낼 것이고, 이곳에서 보낼 모든 시간은 그렇게 여유롭게 흘러가게 냅두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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