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냈는데, 컴컴해진 수돗가에서 물을 기르느라 겁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라면을 끓여 먹었는지 밤에 춥지는 않았는지 가물가물하다. 텐트를 치는 법이 머릿속에 남아 있을 리 없다. 무작정 캠핑용품을 싣고 양양으로 향한 건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다. 별장 텔레비전으로 몇 번인가 재밌게 보았던 ‘캠핑클럽’ 때문에 캠핑이 좀 만만해보였던 것 같다.
별장 아파트에서 도보로 10분. 바닷가 바로 앞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멀쩡한 집과 침대를 놔두고 왜 사서 고생인가 싶기도 하지만, 해수욕장 시즌만 되면 온갖 캠핑카와 텐트가 즐비한 풍경에 나도 한번쯤 끼어 보고 싶었다. 해가 저물 때쯤 도착했는데 야영 공간엔 이미 빼곡하게 텐트가 들어서 있었다. 해변 제일 끝 쪽 주차장 바로 앞쪽에 자리를 잡고 나자 이미 사방은 컴컴해져 있었다.
텐트 가방을 여니 열 몇 개가 되는 쇠막대와 커다란 비닐막이 나왔다. 막대기는 탄성이 있는 로프로 연결되어 있어 관절 관절을 끼는 것은 금방이었다. 대충 텐트의 뼈대가 되는 십자의 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잔뜩 있는 못은 어디에 박아야 하는지. 매트를 비닐막 안에 깔아야 하는지 흙바닥에 먼저 깔아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 텐트를 빌려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1대1로 지도를 받았다. 한 사람은 핸드폰 후레시로 시야를 밝히고, 나머지 한 사람은 무선 이어폰으로 통화를 하면 하나씩 조립을 해나갔다. 그러자 금세 높이를 갖춘 제법 넓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텐트는 초등학교 때 나의 기억보다 훨씬 크고 편안했다. 바닥에 까는 매트는 충분히 푹신했고 입구를 막는 모기장은 딱 좋은 바람을 통하게 해주었다.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 나만의 아늑한 공간이 생기는 것을 보니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의 기분을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생각 없이 하나씩 하나씩 손을 분주하게 놀리는 시간 자체가 ‘힐링’이라 했던 캠핑 애호가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어깨에 맬 수 있는 가방 하나에서 나온 도구들이 연결되고 자리를 잡으면서 순식간에 나만의 아지트로 완성된다. 바닷가 앞이든, 주차장 입구이든 내가 정한 장소가 그대로 나의 쉼터가 된다는 사실이 펜션이나 아파트 숙소와는 다른 ‘자유’를 느끼게 해주었다.
텐트를 치고 나니 저녁 메뉴도 달라졌다. 38횟집에서 거창한 스끼다시 상에 회를 먹을 생각이었던 우리는 죽도 길수산에 가서 ‘테이크아웃’을 해오기로 했다. 초장과 야채쌈을 추가한 광어와 우럭. 딱 3만 원 돈에 싱싱한 횟감이 봉지에 담겼다. 편의점에서 깔라만시 소주를 두어병 사들고 아파트에 들어가 캠핑 의자와 테이블을 들고 나왔다. 모래에 단단히 파묻혀 등을 기대도 편한 캠핑 의자에 앉아 나무 반상에 차려진 회 한상을 보니 뿌듯해졌다. 내가 잡은 물고기도 아니고, 본격적인 캠핑용품이 갖춰진 것도 아닌데. 컴컴한 밤하늘 아래 날것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에 괜히 신이 났다.
다른 집 텐트 구경도 재미가 쏠쏠했다. 본격적으로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은 갖춘 장비부터가 남달랐다. 버너에 화로에 미니 수영장튜브까지. 갓난쟁이 아이부터 게임 좋아하는 중 고등학생 아이까지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한 시설들이 즐비했다. 낮에 물놀이를 하며 젖은 빨래는 텐트 천장에서부터 이어진 빨래 줄에 널어두고, 밤늦게까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미 밤이 되었고 파도소리는 끊이지 않으니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컴컴한 바다에 나가 불꽃놀이를 하는 사람들, 해변 앞에 둘러앉아 술 게임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한여름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느긋하게 밤을 즐긴 사람들은 꼭두새벽부터 눈을 떠야 했다. 해는 동쪽에서 뜨고 우리가 친 텐트는 동해바다 해변가 한복판에 있었다. 해는 일출 시간과 동시에 텐트 속을 뜨겁게 데우기 시작했다. 올라간 온도와 눈에 쏟아지는 빛에 그대로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잠이 깨기도 전에 너무 더워 수영복을 팔에 끼워 입고 바다로 들어갔다. 바닷물은 차가웠고, 이제 막 떠오른 해는 물 위를 눈부시게 비추었다. 정신이 들 때까지 이리저리 떠다니며 물장구를 쳤다. 텐트 옆에 가져다준 보드를 팔에 끼고 다시 물에 들어가 아무도 타지 않는 파도를 향해 나아갔다. 본의 아니게 아침 서핑을 하고 나오니 아직 9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사람이 없는 여유로움과 아직 땅에 가까운 태양의 뜨거운 열기가 좋았다.
여름 성수기에는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도 예약이 꽉 차고, 펜션이나 민박도 가격이 폭등한다. ‘예약 전쟁’을 치르지 않고, 잠 잘 곳 걱정 없이 여행을 떠난다는 건 그만큼 지갑도 마음도 가벼워진다는 뜻이었다. 다음 주말에는 친구 커플과 함께 두 번째 캠핑을 해보려고 한다. 불빛 없는 모래사장에서 밤새 수다를 떠는 시간과 눈뜨자마자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한가로운 아침을 기대하고 있다. 차 뒷좌석을 젖혀두고 하룻밤을 보내는 ‘차박’을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는데, 하늘을 지붕 삼아 땅을 침대 삼아 하룻밤쯤 조금 불편하게 지내고 나면 어디 가서도 내 한 몸은 건사하겠다. 그런 자신감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