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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보다 별장

별장, 나눠쓰는 즐거움

by 민지숙

* 즐거운 순간들이 너무 많아 돌아오는 대로 바로 쓰려 했던 이야기를 한 달이나 미뤄두었다. 게으른 성격 탓에 좋은 소재를 놓쳐버리는 때가 많은데. 유난히 길었던 한주를 마무리하며 지난 별장 주말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한다.



지난해 여름, ‘공유별장’이란 공간을 취재한 적이 있다. 컨셉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목조로 된 소형 주택을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임대해 나눠 쓰는 별장이다. 수도권 인근의 공터에 세워진 목조 건물은 크기는 작았지만 유럽 어느 곳의 작은 오두막 같이 아늑한 느낌이었다. 폴딩 도어로 만들어진 베란다 유리는 까페처럼 활짝 열어둘 수 있고, 작은 주방과 샤워실 2층으로 이어지는 침실 공간은 온전히 ‘휴식’을 위한 목적으로 꾸며져 있었다. 이케아 가구와 소품에 익숙한 젊은 사람들은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공간이었다. 기업체 대표나 은퇴한 노부부, 연예인 같은 유명인사의 전유물 같던 ‘별장’을 누구나 가질 수 있다는 문구로 홍보되고 있었다.



사실 젊고, 지갑에 여유가 없는 이들이야말로 별장 생활을 필요로 한다. 호텔이나 리조트의 경우 프라이빗하고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할수록 값이 배로 뛴다. 내 공간이라는 편안함은 기대하기 어렵다. ‘공유별장’은 주말마다 펜션이나 캠핑여행을 즐기며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인 청년들이 타겟이었다. IoT 기술로 문 잠금, 가스, 수도 등을 원격으로 조절할 수 있어 공유 공간의 보안과 관리 문제를 해결했다. 5명이든 10명이든 일정 금액을 내면 다른 사람들과 스케줄 조정을 통해 원하는 시간에 별장을 이용할 수 있다. 매 주말 숙박 어플이나 펜션 사이트를 뒤지며 싸고 조용하면서, 넓은 숙소를 고르는 데 지친 사람들은 한번쯤 눈길이 갈만한 서비스였다.


양양의 아파트 역시 ‘공유별장’처럼 이용하고 있다. 친구들이나 회사 선배들이나 가족들이 필요한 시간에 기꺼이 빌려준다. 어차피 비어 있는 공간이니 선심 쓰듯 빌려줄 수 있다. 별장에서의 아늑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이다. 방 하나짜리 작은 공간이지만 게스트하우스나 펜션이나 어느 정도 불편한 숙박시설에 익숙한 또래들은 큰 불편 없이 만족하는 것 같았다. 수건 빨래며 바닥 모래 청소까지 우리보다 더 깔끔하게 뒷정리를 하고 가는 그들 덕분에 별장이 더욱 쾌적하게 운영되는 이득도 있다. 시간이 맞으면 아예 함께 시간을 보내는 때도 있다. 마지막 여름 날씨였던 9월 첫째 주에도 친구 커플과 함께 주말별장 나들이를 다녀왔다.


금요일 저녁 늦게 퇴근하고 모인 시간은 밤 9시였다. 쏘카 앱으로 인근 아파트에 주차되어 있던 전기차를 빌려 친구네 커플을 만났다. 평소 캠핑을 좋아하는 그들의 장비를 하나씩 옮겨 싣고 나니 차 트렁크가 가득 찼다. 동대문을 지나 강변을 지나 양양 고속도로에 올라 한참을 달렸다. 전기차 충전을 위해 들른 홍천 휴게소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양파링을 먹다가 다시 출발했다. 둘이 다니던 길을 넷이서 가니 괜히 신이 났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도착했지만 계속 떠들면서 와서인지 피곤하지 않았다. 아파트에 짐을 풀고 잠옷을 갈아입고 또 얼마간을 떠들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거실에서 잔 우리는 동이 틈과 동시에 쏟아지는 햇살에 일찍 눈이 떠졌다. 수영복을 갈아입고 바다로 나갔다. 7, 8월의 여행객이 떠난 바다는 더없이 한가로웠고 조용했다. 그날은 기사문 서핑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대회 준비팀도 해변가에 부스와 보드만 가져다 준 채 느긋하게 아침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컵라면도 있고, 체험용 보드도 잔뜩 쌓여 있었다. 작년에는 이 서핑 대회를 구경하기 위해 새벽 당직을 마치자마자 달려왔지만 너무 늦어서 볼 수 없었다. 이번에는 금요일 밤에 일찌감치 내려온 덕에 대회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본격적인 행사 시간이 되기 전 여유로운 한 시간을 물에서 떠돌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게 그 주말의 첫 번째 수영이었다.

오전 9시쯤 아파트에 돌아가니 친구들도 일어나 있었다. 집에서 가져온 커피를 씻어 먹고, 친구네가 가져온 드립커피를 내려먹었다. 한동안 멍때리다 다같이 물놀이에 마음이 동했다. 아직 젖어있는 수영복 차림 그대로 이번에는 4사람이 같이 하조대 바닷가로 나갔다. 여름의 마지막 햇살은 물과 바깥의 온도를 거의 똑같이 올려주었다. 따뜻한 공기에 그보다 아주 조금 시원한 바닷물은 물에 들어가도 바깥으로 나와도 마냥 좋았다. 발아래는 물고기가 잔뜩 모여 우리를 구경했다. 빙어 크기만한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쫓아다녔다. 물장구를 쳐도 좋고, 물 안을 걸어도 좋고, 헤엄을 쳐도 좋다. 코에 물이 들어가지 않는 마스크를 끼고 거꾸로 한 바퀴를 돌아도 좋다. 그렇게 두 번째 물놀이를 한참 즐기다 배가 고파질 때쯤 짬뽕집을 찾았다.



지난 주말에도 하조대 반점 짬뽕이 먹고 싶었지만 가게 사정으로 휴일이었다. 이번에는 운이 좋게 마지막 남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바깥의 나무 테이블에 앉아 짬뽕 4개와 탕수육 하나를 시켰다. 탕수육은 둘이서는 먹기 힘든 메뉴였다. 이번 주말 여행에 친구들과 함께 오기로 하면서 그동안 먹고 싶었던 음식들의 리스트를 쭉 적어보았는데 이 하조대 탕수육이 제일 먼저였다. 찹쌀 튀김에 파인애플이 들어간 것 같은 달달한 소스, 그리고 파슬리 가루가 뿌려진 이 동네 탕수육은 한번 맛본 뒤로 자꾸 생각이 나는 맛이었다. 에어컨 바람에 조금 한기가 돌자 소주도 한병 시켰다. 짬뽕 국물에 소주 한잔, 눅진한 탕수육을 배 빵빵하게 먹었다. 이제 주말 첫날의 오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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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밥을 먹고 바로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우리 4사람 중에 어른은 없었다. 짬뽕집에서 해변가까지 걸어가며 소화를 마친 우리들은 그대로 다시 바다에 들어갔다. 물에 들어가 봤자 게으르게 떠있기만 하니 별탈은 없었다. 아까 만난 물고기 친구들과 재회하고, 잠수를 해 조개를 줍다가 해변가에 알을 낳는 바다거북 놀이를 했다. 정오를 지나 해는 점점 더 달아올랐고, 물에 있거나 모랫가에 누워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노곤노곤해져 낮잠이 자고 싶어질 때쯤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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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마치고, 다 같이 거실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가 저녁엔 회를 먹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번 캠핑에 대만족이었던 길수산 횟집을 가자고 정한 뒤에 또 한참을 늘어져 있었다. 더 늦으면 사람들이 몰릴 시간이 될 때쯤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이번에는 죽도로 향했다. 커다란 가오리를 관상용으로 키우고 있는 듯한 길 수산엔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회를 떠주는 사장님의 손은 빨랐는데, 주문과 계산을 받아주고 쌈채소를 챙겨주는 어머님의 손이 느렸다. 그대로 서서 한 시간을 기다려서야 커다란 광어 한 마리와 매운탕거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친구 회사의 부장님을 그곳에서 마주쳤다. 강원도 붐이 일면서 해변가에서 직장 상사를 마주칠 확률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집에 돌아와 부지런히 손을 놀려 회 안주의 술상을 차렸다. 캠핑을 하려고 가져온 코펠에 밥을 하고, 매운탕 거리를 끓여놓고 2접시나 되는 회를 양껏 먹었다. 두툼한 광어에 서비스로 담긴 고등어 회가 달았다. 주신 베란다 창문으로 가을 바람이 들어오고, 네 명이서 홀짝 홀짝 먹고 마시니 순식간에 상이 다 비워졌다. 매운탕 국물에 밥까지 말아먹고 뒤돌아서 생각난 건 편의점 후식들이었다. 다시 바람막이를 입고 바닷가 편의점으로 나갔다.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기사문 해변가로 나가니 서핑 대회를 마친 사람들의 밤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손가락에 끼울 수 있는 작은 형광 조명과 빛이 나는 야외용 의자가 모래바닥에 널려있었다. 간간히 불꽃놀이 하는 사람들의 소란스러움이 들렸다. 컴컴한 바닷가엔 파도소리만 들리고, 무대 조명과 음악 소리에 사람들은 모래사장을 맨발로 뛰어다녔다. 한편에는 동남아, 인도에서 온 듯한 향초와 가방을 파는 좌판이 열렸다. 3천원에 마음에 드는 향초를 사들고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다. 하루가 길고 길었지만, 피곤함보단 노곤함에 취해 금방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또 한번 커피를 내리고 포도를 씻어 먹고 집에 있던 팩 게임기를 꺼내들었다. 여럿이 있으니 오래된 게임들도 마냥 재밌었다. 잠이 다 깨고 입맛이 당길때쯤 감나무골 황태국밥을 먹으러 집을 나섰다. 아침겸 점심을 먹고 나서는 어제와 같은 일정을 반복했다. 물안경을 쓰고 이번에는 설악 해변에 들어갔다. 기사문과 하조대에 있던 물고기들이 발밑에 더 많이 몰려들었다. 좀 더 넓고 평평한 해수욕장에 한참을 놀다보니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서핑 강습을 받는 사람들은 장판이 파도에도 충분히 신이나 보였다. 아들에게 서핑을 가르쳐주는 젊은 아빠는 파도 대신 보드를 밀어주며 중심을 잡는 아이를 응원했다. 작은 파도에 뒤집어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우리는 동동동 물장구를 계속 했다. 이번에는 조개를 주워 바다 물수제비 놀이도 했다. 이곳 바다에는 소라게가 잔뜩이어서 움직이는 소라를 주웠다가 놓아주느라 또 한참을 보냈다. 세 군데의 바다는 저마다 다른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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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물놀이를 마친 뒤에는 까페 ‘맴맴’을 찾았다. 갓 구운 스콘이 먹고 싶었지만, 마지막 여름 한주를 보내러 찾아온 사람들에 스콘은 딱 하나 남아 있었다. 달콤한 오미자에이드로 아쉬움을 달래며, 까페 앞마당에 앉아 한참 일광욕을 하고 일어섰다. 나른하게 덥혀진 몸에 낮잠이 고파 다시 아파트로 돌아갔다. 이런 식이다. 물에 들어갔다가 허기가 지면 근처 까페나 편의점을 찾아가고, 잠이 고프면 별장으로 돌아간다. 아파트를 거점으로 해변가를 몇 군데고 돌아다닐 수 있다. 그 허술한 일정이 자유이용권을 손에 쥔 것처럼 마음을 느긋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기사문 해변가로 돌아온 우리는 가져온 텐트를 치기로 했다. 15분이면 말뚝을 박고 가림막이 생기는 6인용 텐트는 낮잠을 자기에 훌륭한 공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바다에 들어가 후회가 남지 않을 때까지 서핑을 했다. 물을 먹을 만큼 먹고, 파도에 휩쓸릴만큼 휩쓸리다 보면 “이제 되었다” 하는 순간이 온다. 마지막 힘을 끌어 보드를 해변가에 끌어다 놓고 텐트로 돌아갔다. 수건을 말아 배게로 삼고, 뜨거운 햇살을 피해 눈을 붙였다. 멀리서 서핑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잠이 들었다 말았다 노곤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다른 텐트에서 고기를 굽는 냄새가 잠을 깨웠다.


이제 몇 시간 뒤면 서울로 돌아가야 하지만 캠핑장 고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죽도와 하조대 농협이 문을 닫는 시간을 확인해 부지런히 장을 봐왔다. 삼겹살과 목살, 맥주와 콜라, 마늘과 소세지, 햇반이 도착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었다. 네 사람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주말의 남은 시간은 우리가 원하던 것보다 더 만족스럽게 흘러갔다. 어둑어둑해 질 때 쯤 텐트를 접고 다시 차에 실어 양양-서울 고속도로를 탔다. 8월의 마지막, 9월의 첫번째 주말이었다.


이틀 동안 일곱 번 바다에 들어갔다. 먹고 싶었던 메뉴를 빠짐없이 먹었고, 팥빙수와 팬 케익, 스콘으로 당 충전도 빼먹지 않았다. 주중에는 하루하루 무엇을 먹었는지 모를 만큼 대충 끼니를 때우며 살다가 주말 별장에 와서 이렇게 보양을 한다. 손과 발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하면 귀찮은 일은 절반으로 줄고, 웃을 일은 더 자주 생긴다. 이렇게 적어두지 않으면 몇 달 가지 않아 잊어버릴 사소한 기억들이지만, 그게 조금씩 쌓여 나를 떠오르게 만드는 깃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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