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집보다 별장

하울의 움직이는 성

by 민지숙

어떤 집을 고를까를 결정할 때 가격과 교통과 주변 인프라와 같은 여러가지 조건을 고려하게 된다. 매일 마주해야 하는 현실의 무게가 그런 요소들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별장은 어떨까. 이곳에서 출퇴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지하철로 만나러 가야 하는 지인도 없다. 2주마다 주말을 이곳에서 보내는 생활을 2년째 하고 나서야 무엇이 가장 중요했는지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집과 같이 별장도 한번 정하고 나면 쉽게 바꿀 수 없다. 캐러반처럼 바퀴가 달려 있거나 보트에 지은 별장이 아닌 이상 옮기기 어렵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도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명절이면 찾아가는 본가와 같이 '별장'이 아닌 '또다른 집'이 되어버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은퇴 후 조용한 여생을 누리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아니라면, '이벤트성'이 높은 곳에 별장을 두는 것이 좋다. 지날달 생일을 작년과 같이 양양에서 보내는 동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10월의 셋째 주말 지난해와 같은 하루였지만, 이번엔 양양송이축제와 기사문서핑대회 날짜랑 겹쳤다. 해변가에는 서핑 대회 부스가 차려져 따끈한 오뎅 국물과 핫도그를 손에 들고 세일하는 판초를 구경할 수 있는 매대가 생겼다.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동네 대형견들이 마실을 나온 모래사장을 걸으며 찾아오는 이벤트가 반갑게 느껴졌다. 저녁에는 양양 시내에 나가 초청가수와 송이 경매로 한껏 축제분위기를 즐기는 마을 사람들과 어룰렸다.




서울집에서도 한강에 나가면 연남동에 나가면 여러가지 이벤트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별장을 통해 전혀 다른 지역에 뿌리를 내리면서 그곳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여러 이벤트에 휩쓸리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가을이면 설악산 단풍이 절경이고, 겨울에는 한계령 눈꽃이 인기다. 여름에는 해변마다 한주 건너 서핑대회가 열리고 매월 둘째 넷째주에는 플리마켓이 제법 크게 열린다. 인구 어디에 새로 샵이 생겼다더라 설악해변에 천연효모 빵집이 문을 열었다더라. 마을 사람들과 한두마디 나누면서 인근에 새로운 소식들을 하나씩 접하고 멍하니 누워있다가 생각날 때 찾아가는 가뿐한 맛이 있다. 한껏 옷을 차려입고, 분위기 좋은 바나 까페를 찾아가는 이벤트보다 어깨가 가벼워서 좋다.


얼마 전부턴 별장 공터에 나무 집이 새로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 땅을 물려받은 어떤 젊은 사람이 자기가 살 집을 짓기 시작했다는데 그 모양새가 범상치가 않다. 서울이 바쁘다고 하는데 정작 강원도 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의 속도가 더 빠른 것 같다. 결심을 한 사람들의 행동력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뚝딱뚝딱 까페를 짓고, 게스트하우스를 짓고, 커다란 축제를 기획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인생의 5분의 1쯤만 살고 있지만 일상은 두 세 배 다채로워졌다. 문고리를 돌리고 나서면 볼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는 이곳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떠올리게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