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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보다 별장

별장 엑시트 전략

by 민지숙

별장은 휴식과 영감을 주는 장소인 동시에, 꽤 값나가는 부동산이다. 2019년 한 해를 돌아보면서 별장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이런 저런 비용들을 따져보게 되었다. 처음 집보다 별장 이야기를 쓸 때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별장살이에 대한 낭만과 느긋한 삶이 주는 평화 같은 장점들을 소개하느라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해왔다. 찬바람에 별장 안에서도 이불을 꽁꽁 싸맨 채 누워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요즘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에 좋은 타이밍인 것 같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별장으로 쓸 열평 남짓의 소형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한 비용 대부분은 은행 대출이었다. 주택금융공사의 120개월 그러니까 10년 동안 돈을 모두 갚는 조건으로 원금균등 상환 더하기 3.38% 이자를 내고 있다. 여기에 3%대 신용대출도 얹어졌다. 첫 해 부동산 소개료와 각종 세금을 내고, 인테리어를 하는 데 한 5~6백 만원을 쓴 것 같다. 아파트 관리비는 한 달에 4만원부터 여름철 10만원 가까이 낸 적도 있다. 그리고 서울에서 강원도를 오가기 위해 이용한 렌트카 비용과 이곳에서의 식비, 인터넷 사용료 등등의 돈을 썼다.


** 별장 유지비용

- 아파트 관리비: 매달 4~10만원(냉난방, 가스비 포함)

- 은행 대출 이자: 10~15만원

- 케이블 티비/ 인터넷 사용료: 3만원

- 한달 2번 왕복 렌트비용: 20만원

+ 식비 $$$$

= 한 달 50만 원 이상


계산해보면 꽤 많은 돈이 나간 것이다. 기회비용을 생각했을 때 적금을 한 두개 더 들 수 있었고, 여름과 겨울 휴가를 동남아가 아닌 유럽으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계산은 이미 별장을 사기로 결정한 시점에 예상한 비용을 크게 오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지역 커뮤니티에 속해 있다는 편안함과 별장을 핑계로 더 자주 강원도를 찾아 몸과 마음을 리프레쉬하는 시간들이 50만원 이상의 값어치를 했다. 애초에 1회성 이벤트보다는 크고 작은 변주로 일상의 리듬감을 주는 일에 더 만족감을 느끼는 편이라 그런 것 같다. 별장 생활은 사람들이 적지 않은 돈을 기꺼이 내고 비행기 티켓을 사거나, 콘서트를 보러 가거나 어떤 경험을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올 한해를 돌아보며 정리했을 때 얻은 것은 쉽게 쉽게 떠올랐지만, 잃은 것은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별장도 가격표가 붙어있는 자산이다. 계속해서 감가상각이 일어나고, 주변 시세에 따라 값이 오르내리기도 한다. 엑시트 전략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매매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서울이었거나, 거주 목적으로 매력적인 곳이라면 별장을 팔고 나가는 건 마음먹기에 달린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 곳은 한 동 전체가 주말에만 사람들로 북적이는 '별장 아파트' 느낌이 강하고 성수기인 여름과 비성수기인 겨울의 간극이 큰 도시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이곳을 처분하고 나가야 할 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017년 이곳을 처음 찾아왔을 때와 달라진 것들이 있다. 부동산 전문가가 아닌 나는 모든 변화를 정확히 읽어낼 수 없지만 눈여겨 보고 크고작은 정보를 모을 수는 있다.


1. 인근 공항 신규 노선 취항

- 아파트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공항에 국제노선이 취항했다. 그것도 우리가 몇 년 후 이주를 계획하고 있는 대만 노선이다. 반대로 대만에서 강원도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올 길도 열렸다. 처음 강원도 서핑붐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렸던 아이템은 중화권 관광객을 상대로 한 서핑 수업이나 관광투어였다. 인천공항에서 관광버스로 강원도 곳곳을 누비는 관광객들을 많이 보았다


http://www.etnews.com/20191226000287


2. 아파트 주변 신규 건물 공사

- 아파트 앞 빈 공터에 나무 저택이 생겼다. 원래 그 땅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펜션을 하려는 지 꽤 큰 건물을 올렸는데. 건물 자체가 미관상 나쁘지는 않다. 호젓한 아파트 한동이 매력이라면 매력이었는데 사람들이 더 오가게 되는 것이 호재가 될지는 조금 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코 개러지 까페 옆에는 커다란 캐러반이 생겼다. 2020 여름에는 더 북적이는 별장 풍경이 예상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는 건 좋은 것 같다.


3. 서핑 + 프리다이빙과 요트 등 다양한 수중스포츠

- 기사문항을 벗어나 시야를 넓혀보니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스포츠들이 훨씬 더 다양했다.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 스팟도 있고, 지난주에 처음으로 가본 속초항에는 낚시와 레저용 요트들이 즐비했다. 파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서핑 외에도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물놀이가 있다면 비성수기에도 사람을 모을 수 있다. 우리들의 관심사 자체도 확장시켜볼 수 있을 것이다. 별장을 렌트해주거나 새로운 프로젝트 사이트로 만들려면 이런 복합적인 생태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처음 부동산 계약을 했을 때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난 어느 시점에 덜컥 겁이 난 적이 있다. 만약에 직장 생활에 문제가 생기거나, 집안 사정으로 갑자기 큰 돈이 필요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지금의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돌아오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평소의 소비 습관을 좀더 신경써서 돌아보고 노력하게 되었다. 첫 월급을 받고 이제 3년차 월급쟁이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나의 생활은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안의 수평추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나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지켜야 할 소중한 곳이 있다는 생각 덕분이 아닐까.


먼 미래를 위한 계획보다 현재 오롯이 만족할 수 있는 선택이 정답이 없는 인생에 가장 든든한 출구 전략(엑시트)이 될 수 있다. 언제 풍랑이 불어 뒤집힐지 불안한 미래지만, 나만의 좌표를 따라 매일 조금씩 나아가는 삶이 가장 주체적이고 행복한 항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돈에 대한 현실적에 지레 겁을 먹기보다는 눈에 띄는 건물과 들려오는 소식을 따라 잠깐씩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나는 원래 걱정이 많고 일정 짜는 일에 강박을 느끼는 사람이지만, 평온한 중심 없이는 그 모든 게 무의미한 고통이고 스스로를 갉아먹을 뿐이란 걸 배워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포털 사이트에 우리 별장 아파트 매매가를 한 번 검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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