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양양 첫 장거리 운전, 싸워도 갈 곳이 있다
2009년 겨울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한 일은 운전면허 따기였다. 도로주행 시험 날 펑펑 눈이 왔지만, 악천후에 오히려 시험관은 마음이 유해졌고 쉽게 면허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면허 시험이 좀 더 어려웠어야 했을까. 손쉽게 얻은 면허는 내가 과연 진짜 운전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10년 동안 품게 했다. 작년 한 해의 목표 중 하나는 직접 양양 별장까지 운전해서 가는 것이었다.
2019년 봄, 꽤 많은 돈을 들여 운전연수를 받았다. 그러고 나서 쏘카를 빌려 강원도에서 몇번 차를 몰아봤다. 별장 아파트 주차장은 차가 텅텅 비어있어서 주차 연습을 하기 좋았다. 죽도에서 하조대, 가까운 식당까지는 몇번 손들어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고도 또 1년이 지나갈 뻔한 지난 12월 더이상 미뤄둘 수 없는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양양에서 1박을 하기 위해 주말 일정을 비워두고, 내가 직접 운전을 해서 양양까지 가겠다는 계획을 여기저기 퍼트렸다. 회사 동기는 여행자 보험이라도 들어야 하는 건 아닌가 물었고, 조수석에 앉게될 내 애인의 안위를 걱정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오랫동안 마음만 먹었던 일이라 돌이킬 수는 없었다. 몇번 타봤던 전기차 볼트를 빌렸고 시야가 흐려질까 안경도 쓴 채 운전석에 앉았다.
가운데 패달이 브레이크인가 악셀인가. 이것부터 헷갈리는 사람이 운전대를 잡았으니 손에 땀을 쥐는 것은 나보다는 옆에 탄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이드 미러의 위치를 조정하고, 의자 높낮이를 바꾸고 나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부르릉 소리도 없는 전기차가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앞으로 나가고, 핸들을 움직이면 차가 기울었다. 다행인지 주말 오전 시내는 꽉 막혀 아주 천천히 네비게이션 방향을 따라 몇 미터씩 전진했다.
문제는 고속도로에서부터 시작됐다. 의자를 너무 당겨서 앉았는지 등과 목이 댕기기 시작했다. 이미 시내에서 꽤 오랜 시간 운전을 한 탓에 몸이 굳어버린 탓이었다.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면서 까딱하면 차가 뒤집힐 수 있다는 상상을 수십 번 했다. 내가 지금 운전대를 부여잡고 있구나 생각이 든 건 두번째 휴게소를 지나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휴게소에 들어가면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팔과 목이 너무 아파서 한번 차에서 내리면 다시 타고 싶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피곤하면 한번 쉬고 가라는 애인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어서 이 경주를 마무리 짓고 싶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양양인제터널은 10.96킬로미터. 여기에 들어서기 직전까지 고양이에게 쫓기는 쥐처럼 달리기만 했다.
그렇게 서울에서 양양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다. 3시간 20분이 걸린 길고 긴 여정이었다. 나의 첫 장거리 운전. 뿌듯하고 뿌듯했다. 평소 애인이 운전한 차였다면 2시간 30분 정도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언제든 혼자서 별장으로 도망쳐 올 수 있는 전용 비행기 표를 손에 넣은 기분이었다. 가족들을 데리고 짧은 별장 여행을 계획할 수 있고, 화가 나는 일이 있거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면 언제든 내가 원하는 때 이곳에 올 수 있다. 서울 집과 양양 별장 사이에 '텔레포트'가 하나 열린 기분이었다. 강원도 아파트는 이제서야 나에게 진정한 의미의 '별장'이 되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와 소설 <마담 보바리> 에서 내가 공통적으로 꽂힌 주제는 '운전하는 여성'이다. 작품이 쓰여진 시대의 배경에서는 자동차가 아닌 마차에 타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마차를 몰 것인가, 남성이 모는 마차에 실려갈 것인가의 문제가 무엇보다 가장 의미 있는 서사로 읽히기 시작했다. 운전대에 관심도 없던 여성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직접 마차를 몰기 시작하는 장면이 그 인물이 이전과는 달리 독립적이고, 자아를 가진 주체로 거듭났다는 상징으로 보였다. 가장 최근에는 드라마 <www>의 마지막 장면에서 세 명의 여주인공이 슈퍼카를 끌고 달리는 모습이 있있다.
오랜 시간 꽂혀있던 문학적인 상상을 나의 현실로 옮긴 결과가 이번 별장 여행이었다.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별장이라는 또다른 익숙한 공간으로의 이동이었지만 과정은 전과 달랐다. 몸이 조금 더 피곤하고, 운전에 능숙한 사람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내 손으로 속도와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거기에 아무리 먼 거리라 해도 결국 나의 또다른 집으로 향해 간다는 사실이 불안 속에서도 내 마음의 중심을 지킬 수 있게 해줬다.
나는 10년 주기로 무언가를 마무리 짓는 습성이 있다. 11살에 읽은 책에서 꽂힌 인도에 21살에 찾아갔고, 거기서 만난 악기를 31살이 되어 배우기 시작했다. 면허를 따고서도 10년이 지나서야 겨우 '운전을 해봤다'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장거리를 뛰어보게 되었다. 굉장히 게으른 건지, 학습이나 마음먹기의 속도가 느린건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을 다 합친 결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