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마치고 한 달만에 강원도 별장을 찾았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 순간순간 그 반가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올해 꼭 하프 마라톤을 뛰어보겠다고 연초부터 연습하던 친구 L은 코로나19로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고 아쉬운 마음으로 양양 나들이에 함께했다. 나와 남편, 그리고 친구 L 이렇게 세 사람은 금요일 밤 양념갈비를 잔뜩 먹고, 눈을 붙인 뒤 일어나자마자 '감나무 식당' 황태해장국을 비웠다. 할일 없이 바닷가를 빈둥대며 문을 열기 기다린 까페 '맴맴'에서 버터 케익과 오미자 차를 시켜두고 평온한 시간을 가졌다. 한 사람은 잡지를 다른 한 사람은 수필집을 읽고, 또다른 사람은 구몬 학습지를 풀었다.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에 실린 충북 음성 '품바 축제' 이야기에 웃음이 터진 L부터 시작이었다. 전국축제자랑이라는 코너 제목을 가진 연재글은 전국의 지역 축제장을 찾아간 에세이스트가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맛깔나게 써내려간 것이었고, 그 감칠맛이 지나치게 흘러넘쳤다. 먼저 구몬을 풀고 있던 남편이 받아 읽었고, 전염된 웃음에 이어 내 차례까지 왔다.
"사내 자슥들은 영 값어치가 없어. 소시지 500원에 호두 두 짝 해봐야 얼마 하겄어? 800원? 근데 우리 여자들은 말이지, 보통 18억짜리라고. 일단 수박 두 통만 해도 사내놈들하곤 게임 오버지. 근데 거기서 쭈욱 내려가면 풀이 무성한 전원주택이 10억! 더 내려가면 샘물 솟는 광천수가 4억!" 더는 옮겨 적지 않겠다...
황당한 축제의 황당함을 고스란히 전해준 필력 덕분에 우리 세 사람의 정신은 온통 '품바'에 쏠렸다. 티몬과 품바, 각설이 품바, 거지꼴로 몰려다니며 온동네를 시끄럽게 하는 품바, 여자 품바도 설치고, 남자 품바도 설치고, 심지어 축제 굿즈까지 마음 심란하게 설치는 축제였다. 이 글을 써내려가는 지금도 정신이 혼미해 웃음이 터져나오게 만드는 엄청난 축제였다.
이 축제에 39만명이 다녀갔고, 163억 원의 경제효과를 봤다는 기사를 본 순간 우리는 이 세상이 얼마나 되는대로 돌아가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39만 명이라니! 160억이라니! 이 말도 안되는 축제에 그 많은 사람들이 차를 끌고 기차를 타고 엉덩이가 뻐근해질때까지 달려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고 간 것일까. '품바'의 존재 자체를 오늘 처음 알게된 우리 세 사람만 빼고 어디선가 광활한 문화유산의 장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인가. 스스로의 한국문화 감수성을 돌아보며 반성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도 뭔가 해보자. 할 수 있을 게 분명하다. 세상에 품바 축제도 있지 않은가. 저 각설이를 보기 위해 수십만명이 기꺼이 장거리 운전을 감수한다고 하지 않는가. 외국인도 불러야지. 품바 축제에도 '글로벌 품바 래퍼 대회'가 있었고, 단 한 명의 르완다 학생이 참여해 훌륭하게 '글로벌'을 담당해내지 않았던가. 우리도 열어야 한다. 마침 송이로 유명한 양양이지 않은가. 별장 군민으로서 사전투표까지 하고 온 나로서 책임감까지 느꼈다. 우리 양양을 대표할만한 축제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프 마라톤을 위해 연습해온 달리기가 물거품이 된 L이 마침 앞에 있었다. 마라톤 대회? 검색을 해보니 '양양 송이 울트라 마라톤'이 있었다. 앗차, 역시 지역축제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누군가는 벌써 품바로 축제를 만들지 않았나! 한발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 L은 그 달리기 대회가 2016년도인가 언제 한번 기사로 나온 뒤로 감감 무소식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그렇다면 아직 기회가 있지 않을까. 마침 이곳에는 지난해부터 취항을 시작한 공항 '플라이강원'이 있지 않은가. 언젠가 한국에 마라톤을 뛰러 왔다는 중국 기자들을 잔뜩 만난 적이 있었다. 뭐 볼 게 있다고 한국에 비행기까지 타며 마라톤을 하러 오냐고 묻는다면. 그게 별 이유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대회가 열리고. 비행기가 내릴 수 있고. 예약할 숙소가 있으면 되는 것이다. 양양국제송이마라톤, 짧게 '양송이 마라톤'이 될 우리들의 축제는 코로나19가 지난 2021년 봄에 열리기로 했다. 우리끼리 일단 그렇게 정했다. 양양에도 문화광광체육국 관광마케팅과라는 게 있고 해외마케팅과도 있고 업무내역에 분명 '지역특화 및 향토 문화 행사 지원'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033으로 시작하는 내선번호까지 나와있으니 이제 적당한 날을 골라 전화를 걸어 물어보기만 하면 될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억울하게 마라톤을 취소 당한 러너들만 모아도 얼마인가. 당장 나를 포함한 4명의 친구들이 보성녹차 마라톤에서 고작 10키로를 뛰기 위해 달리는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내려가지 않았던가. 지역에서 지원해주지 않으면 당장 30명을 모아 우리끼리 달릴 수도 있다. 그리고 품바 축제처럼 우리끼리 송이버섯 모양 메달을 걸어주고, 축하 공연을 가지며, 막걸리 몇잔을 나눠마시면 되지 않을까. 그때 만난 중국인 기자들 몇은 부르면 부르는대로 올 것이 분명하다. 뚜르 드 프랑스, 런던 마라톤, 르망24 뭐든 처음 시작이 있었을 테니까 일단 되는대로 시작을 해보자.
14평짜리 아파트 별장은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결혼식에서 남은 와인과 맥주가 여러 박스에 별장 앞 서핑샵과 게스트하우스 사장님들은 뭐라도 거들어 주실 분들이다. 도쿄올림픽을 비롯해 2020 기대했던 축제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 모든 것을 포기한 내년에는 축제에 대한 피가 끓어오를 것이다. 품바축제든 양송이 축제든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완전히 망한다 해도 이렇게 큭큭 대면서 시원하게 써내려갈 에피소드 하나는 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