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을 두고 호텔에서 보낸 1박 2일
"왜 맨날 강원도로 와야 해"
별장살이를 시작한지 햇수로 3년차. 양양 바닷가는 계절 마다 한번 오던 곳이 한 달에 한번, 2주에 한 번, 매주 오는 곳이 되었다. 반짝거리는 아침 바다부터 분홍빛 노을이 지는 늦은 오후의 바다까지. 사계절 풍경이 눈에 그려질 때가 되면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는 왜 맨날 여기서만 놀지"
주말 근무가 비기만 하면 부리나케 양양고속도로를 달렸더니,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데이트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영화관에 간 것도 인제 CGV였고, 여름 휴가 일주일의 시간도 이곳에서 모두 보냈다. 서로의 생일에도, 명절에도, 어쩌다 생긴 오프날에도 파도가 높든 낮든 서핑을 하겠다고 별장을 찾은 것이다.
별장이 질리는 날도 온다. 라오스나 태국에서 느꼈던 바닷가의 한적함을 비행기를 타지 않고서도 느끼기 위해 선택했던 바다별장이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뜨끈한 난방, 아늑한 우리만의 아지트를 완성한 뒤로 정말 많은 쉼을 얻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좋지만은 않은 점도 있다.
먼저 서울에서 보내는 일상이 흔들리기 쉽다. 금요일 저녁이면 출근한 옷 그대로 별장으로 향해 주말을 보낸다. 서울-양양 고속도로는 낮 시간엔 사시사철 막히기 때문에 저녁 8시 9시쯤 출발하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자정이 가까워진다. 씻고, 고양이들을 챙기고 침대에 눕기 바쁘다. 그대로 월요일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쌓인 집안일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월요일 저녁쯤 정신을 차리고 청소기와 빨래를 돌려보지만, 온전한 하루가 남아있어야 할 수 있는 정리들이 따로 있다. 계절 옷을 창고에 정리한다더나 재활용 쓰레기를 차곡차곡 내보낸다거나 집안 구석구석 묵은 먼지를 청소하는 것 등등이다.
그런 사소한 일들이 일상을 불편하게 만들 때쯤, 별장에서 보내는 시간 역시 그렇게 재밌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그곳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마치 동네 이웃처럼 불편해 지는 때도 있고,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게 된다. 잠옷 차림으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이웃을 만나 인사를 하면 계면쩍은 것처럼, 그날 그날 나의 민낯과 조금 우울한 기분을 별장 이웃들에게 들키는 순간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인간은 참 간사한 동물이라, 마냥 좋던 것들이 익숙해지면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전세계 호텔에서 이용할 수 있는 회원권이나 리조트 이용권이랑은 조금 다르다. 별장은 어디까지나 제2의 집과 같은 공간이고, 시즌마다 휴가 때마다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 장점이자 한계다. 지난주에 내가 치우고 가지 않았으면 이번 주말엔 지저분한 채로 사용해야 하는 온전히 나의 공간의 연장이다.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책임과 별개로 보일러가 고장나면 기사를 불러야 하고, 집값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신경도 쓰이는 그런 미묘한 공간이다.
언제부터 시작된 스트레스인지 결국엔 쌓여 폭발하고 말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바닷가인데, 그렇게 재미있어 하던 사람들과의 술자리였는데. 어떤 것에도 어느 누구에게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식당과 까페인데도 '지겹다'는 생각에 방에 드러 누워있고만 싶었다. 다른 부수적인 요인들도 있었지만, 나의 여가 시간 모두를 꼭 이곳에서 보내야만 하는 것인가 억울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그것을 멈추기 어려웠다.
별장은 노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 품과 같은 비용을 줄여준다. 우리처럼 밥먹듯이 바닷가에 오는 사람들에겐 숙소비와 체류비를 생각했을 때 충분히 남는 장사다. 하지만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새로운 것들을 포기하는 게 습관이 되는 건 좋지 않은 신호였다. '값싸게 놀기'가 유일한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직장인이 왜 일년에 한두번 휴가 때만 이런 넉넉한 여유를 즐겨야 하는가에 의문을 가지고 별장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년에 한두번 즐기는 색다른 경험의 가치를 무시하고 편한 것만 찾는 것 또한 잘못된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서울에서 출발해 강원도 별장에 짐을 풀고, 다시 짐을 싸서 경포대 호텔로 향했다. 여느 여행객처럼 인피니티 풀에서 실컷 사진을 찍고, 처음 보는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고, 낯선 사람들과 함께 엘레베이터를 타는 1박 2일을 보냈다. 누가 보면 집 놔두고 엄한 짓 한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이런 기분전환은 필요했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경험의 문이 닫혔지만 그 핑계로 일상에만 매몰되면 2020년 한 해가 너무 아깝고, 나의 황금같은 주말이 아깝다. 이 세상에 모든 문제와 스트레스를 해결해주는 단 하나의 답은 없다. 새삼 노는 것도 부지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