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별장에서 있었던 가장 충격적인 하루를 꼽으라면 바로 그날 밤일 것이다. 언젠가 '별장 칼럼리스트'가 되면 그때 찍어둔 동영상과 목격자 씽크로 생생하게 전해야지 마음 먹었던 밤이 있다. 심심해서 밤 산책을 나간 길에 '고래'를 본 날이었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아파트에서 뒹굴 거렸다. 낮에는 전날 사온 엄지네 꼬막과 만석 닭강정을 데워 먹고, 하염없이 누워있었던 것 같다. 달이 뜨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몸이 근질거려 저녁산책을 나왔다. 그리고 어떤 풍경을 마주하게 될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컴컴한 바닷가에는 사람 한 명 없었다. 해변가 모래를 대충 걸어 다니다가 유난히 작았던지, 유난히 컸던 달이 신기해서 한참을 봤던 기억이 난다.
해안가 골목을 따라 부두 구경을 갔던 게 시작이었다. 고요하던 모래사장 쪽과 달리 조명등이 환하게 켜진 선착장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시큰한 피비릿내가 났다. 그 많은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본 건 처음이었다. 해안경찰대 건물 쪽 식당가에서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커다란 마대 봉투를 잔뜩 들고 부둣가로 나가고 있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 기둥에 가려져 있던 그것의 모습이 드러났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곳엔 고래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세부나 호주 여행 영상에서 봤던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거대한 고깃덩어리였다. 그물에 잡힌 채 죽은 고래 고기는 개인이 취해도 법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 마을 근처에서 우연히 잡힌 고래 한 마리를 해체하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총동원된 것이었다. 남자들은 커다란 칼과 도구를 이용해 고래를 잘랐다. 도막이 난 덩어리들은 하얀색 마대자루에 담겼는데 그것들은 먹을 수 없는 부위들로 밭에 뿌려져 비료로 쓰일 거라고 했다.
포유류인 고래 사체는 같은 종인 사람의 시체와 비슷한 냄새를 풍겼다. 물로 씻어내도 계속 흘러나오는 기름과 피들은 곧 바로 바다로 흘러갔다.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바닷물은 이미 탁한 검은색이었다. 주변의 서핑 샵에서도 많은 청년들이 나와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티셔츠의 로고만으로 어느 샵 사람들인지 알 수 있었지만, 그 밤엔 서핑이 아닌 온통 고래 이야기 뿐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멀뚱이 서서 구경하고, 나이 든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의 손은 분주했다.
“아침부터 해체하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못 끝낸 거래요.” 역한 냄새와 충격적인 모습에 정신을 못차리고 원래의 해변가로 돌아온 우리는 가만히 생각을 했다. 이 날의 에피소드는 꼭 이야기로 남겨야겠다. 그러려면 더 자세히 더 제대로 된 기록이 필요하다. 이 날의 기억은 양양에서 본 어떤 장면보다 특별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현장’으로 뛰어간 우리들은 핸드폰 카메라와 휴대용 짐벌로 미친 듯이 고래를 찍기 시작했다. 코를 부여잡고 고래 시신에 다가가 그 크기를 알 수 있도록 찍었다. 가까이서 멀리로, 앞에서 뒤로 사람들이 고래의 ‘조각’을 트럭으로 실어 나르는 모습을 촬영했다. 질문을 던지고, 목격자들의 반응을 담았다.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 신이 났다.
주말 저녁 산책을 나갔다 고래 고기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해체된 고기는 포항 항구로 실려가 그곳에서 팔린다는 소식을 지나가던 아저씨한테 얻어 들을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너무나 한가롭고 평화롭던 시간이 순식간에 다른 장르로 바뀌었다. 원래 살던 곳이 아닌 이곳에 나와 있었던 덕분에 만난 진귀한 밤이었다.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손잡이를 바꿔 돌리면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열리는 문이 나온다. 집 앞이 부둣가 되기도 하고 초원이 되기도 하고, 마녀의 성 앞이 되기도 한다. 별장 살이는 이따금 ‘움직이는 성’에 실려 다니는 환상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