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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Jul 12. 2019

집보다 별장

별장 '이웃'

  이제 양양 별장의 먹거리에 대해 썼고, 서핑 이야기도 했으니 ‘이웃’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총 1동. 84세대가 함께 사는 15층짜리 아파트에는 흥미로운 이웃들이 많다. 금요일 밤늦은 시간이 되면 아파트 앞 주차장에는 SUV와 캠핑카, 레이와 아반떼가 삐죽삐죽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평일 낮에는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주말을 이곳에서 맞이하기 위해 열심히 찾아온 반 외지인들의 차로 절반이 차게 된다.     

 

  첫 번째로 만난 이웃은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1층에 들어온 4인 가족이었다. 중학생쯤 되는 딸들이 있었고, 날이 좋은 주말에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곳을 골랐다고 들었다. 아직 아파트 구조에도 익숙해지기 전에 만난 이들은 친절하게도 자신들이 꾸민 공간을 기꺼이 보여주었다. 분명 우리 별장과 똑같은 평수에 층만 다를 뿐인데 엄청나게 다른 느낌이었다. 베란다를 시원하게 확장했고, 좋은 자재로 주방과 구석구석을 반듯하게 마감했다. ‘어른’의 손길이 느껴지는 진짜 별장 같은 느낌이었다.      


 이때만 해도 우리집은 체리색 몰딩에 우중충한 가구로 심난했기 때문에 엄마 아빠 아이들의 안정된 가족이 꾸민 공간에 주눅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우리는 집을 사는 것만으로 빠듯한 상황이었고, 리모델링 비용은 엄두도 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들 가족의 설레는 표정은 힘이 되었다. 별장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그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이 근처에 또 있단 사실은 뭔가 든든한 우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 정도 돈은 물론 없지만, 잘 꾸며진 집의 분위기만으로 우리도 어떻게든 되지 않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알게 된 것은 같은 층에 살고 있는 이웃들이었다. 한 층에 5세대가 전부인 작은 아파트인데 그들과 실제 마주치게 된 건 집을 꾸미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이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장족’이라는 건 금방 표시가 났다. 아파트 분리수거 장소에는 매번 술병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주말에도 아파트는 비어있는 경우가 더 많았고, 날이 좋으면 사람이 더 많았다. 주말 저녁에는 새벽까지 먹고 마시는 이웃 주민의 소음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적도 있지만 그들도 우리도 이곳에서만큼 멋대로 지내고 싶은 마음은 같다는 생각에 넘길 수 있었다.      


 더운 날씨에는 아파트 현관을 열어두고 방충망을 걸어두는 집이 많다.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 길에는 한 식구들 친구들이 왁자하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오늘은 어디를 나가본다더라, 저녁엔 무엇을 먹겠다던가. 한 번은 우리 집에 2대가 있는 써큘레이터를 빌려주며 인사를 하기도 했다. 계면쩍은 것이 그 집이나 우리 집이나 보통의 아파트 주민처럼 아침 저녁으로 마주칠 일이 없지만 서로의 삶을 더욱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휴양지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통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별다른 안부 인사 없이도 서로 주말을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 눈에 선하다.  


 이삿날 떡을 돌린 것도 아닌데 이웃 주민과의 만남은 차례차례 이어졌다. 어느 주말 아침, 여느 때처럼 늦잠을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쿵쿵 소음이 울려 퍼졌다. 에어로빅을 하는지 아이들이 뛰는지. 아무리 별장에서의 자유가 소중하다지만 주말 아침에 너무하지 않은가 싶게 큰 소리였다. 주택에만 살아봤던 나는 층간소음 해결의 가장 단순한 방법을 골랐다. 정확히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윗집 옆집 다 벨을 눌러보았지만 빈집이었다. 설마 하며 찾아간 아래층에서 뜻밖의 소음의 원인을 찾게 되었는데 그건 노부부가 마늘을 빻는 소리였다. 문을 열어준 게 할아버지, 안에서 마늘을 빻고 계신 분이 할머니였다. 씩씩거리며 문을 두드렸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광경에 당황한 나는 “금방 끝나시죠?”라는 이상한 말만 남기고 되돌아섰다. 우스운 일이었지만 이곳은 별장인 동시에 누군가 매일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진짜 일상이라는 걸 그때서야 떠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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