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기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2018년, 강원도에 별장을 샀다. 2019년, 서울의 단독 주택을 사서 신혼집으로 꾸몄다. 그리고 2020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결혼식'이 아닌 '결혼 전시'를 열었다. 내가 바라던 것들이 하나씩 실현되는 것을 보면서 방향을 정하고 길을 걷는 일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앞으로 이 4년 동안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보려고 한다. 생각하는대로 살게 된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무엇에 대해 생각할 것인가를 차분히 정리할 공간이 필요했다. 스물 한 살의 내가 인도에서 보낸 석 달을 지난 10년 동안 끊임없이 떠올린 것처럼, 이야기는 끝없이 변주될 것이다. 그 중에 내가 찾은 첫번째 키워드는 '실패 혹은 망함(페일루어)'이다.
<페일루어 커플>
망해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어깨가 가볍다. 계획은 거창해지고, 마음은 쉽게 부푼다.
결국 크고 작은 실패와 예상치 못한 불행들이 돌 구르듯 줄줄이 따라 온다. 그걸 가벼운 마음으로, 어이없는 농담으로 받아들일수록 내가 바라던 내 모습에 더 가까워졌다.
더 강하고, 더 행복하고,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망한 것은 마이너스지만 망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일들이 쌓여 그 다음이 생겼다. 입시나 취업에선 상상만으로 끔찍했던 실패들이 이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나의 하루는 제대로 되는 일보다는 실패하고 어그러지는 일이 훨씬 많다. 매일 하나씩 망친다 해도, 얼굴만 봐도 웃어 넘길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해야지 생각했다. 둘이 함께면 망하고 망해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의 결혼 전시는 열기도 전부터 망한 것으로 하고 싶었다.
바라던 대로 기자라는 이름을 갖기까지 30번이 넘는 실패가 있었다. 똘똘하게 별장을 관리하며 부가 수익을 내려고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주택을 살 돈이 모자라 친구들을 세입자로 끌어들여야 했고, 결혼을 빙자한 전시회는 #2020 코로나로 아슬아슬하게 열릴 수 있었다. 모든 성공은 실패나 역경 끝에 성공이라는 이야기나,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바라던 이 모든 일들은 결국 '망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는 것이 새삼스럽게 머릿속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언론인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 곳이나 취업해 먹고 살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마지막까지 원서를 쓰고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취업 4년차에 접어들면서 그런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어쨌든 마지막까지 나를 움직인 건 그런 착각이었다. 에어비앤비로 수익이 나지 않아도, 애인과 둘이 쓰는 주말 데이트 비용만 아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퍼스트 하우스'보다 '세컨드 하우스'를 덜컥 먼저 사게 만들었다. 집 안에 있는 모든 동전을 긁어모으고, '김미영 팀장' 대출 상담까지 받으며 집 살 돈을 구한 몇 달도 마찬가지였다. 망해도 죽지 않는다. 다른 길은 찾으면 생긴다.
몇 년 전 '퍼펙트 알고리즘' 이란 개념이 눈앞을 밝힌 적이 있다. 언젠가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사람보다 빠르고, 완벽하게 풀어내는 알고리즘이 발견될 것이란 이야기였다. 알고리즘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인간에게 남은 것은 계속해서 질문을 만드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실패를 동력으로 계속해서 진화하고 그 과정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끝없이 반복된다. 어차피 답은 찾아질 것이니, 틀리거나 망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인공지능 대신 인간이 맡게 될 마지막 역할일 지 모른다.
첫 월급을 받고 나서야 나는 진정한 '1'이 되었다. 애인을 만나 '1+1'의 인생이 되었고, 그와 창신동 집으로 이사오면서 아랫층 식구까지 '1+3', 마지막으로 바라던 전시회를 열면서 '1+n'이 되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앞으로 10년 뒤인 2040년 나는 'n+n'의 삶을 살기 위한 셰어 커뮤니티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몇 개의 낡은 건물을 무너뜨리고, 오랫동안 떠올렸던 구조의 새로운 공간을 지을 것이다. 그 안에서 나의 멋진 지인들이 함께 '망해도 괜찮음'의 정신대로 살아보려고 한다. '페일루어 커뮤니티'. 앞의 글은 마지막 한 문단의 선전포고를 위한 포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