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틱톡(TIK TOK)
10대들의 거대한 '영상 공구함'
한양성곽 꼭대기인 우리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는 엄청난 오르막을 지나야 한다. 어느 날 버스에서 한 초등학생 여자 아이를 마주쳤다. 내가 앉아있는 자리 앞이었는데, 안전 바에 몸을 사선으로 기댄 채 핸드폰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버스가 심하게 흔들리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그 아이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손가락을 위로 휙휙 올리는데 새로운 영상이 끊이지 않고 재생되었다. 이어폰을 끼지 않은 채 배경음악을 고스란히 들려주던 그 어플리케이션은 ‘틱톡’이었다. 음표 모양의 로고에 현란하지만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영상들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고 있던 그 학생이 미지의 두려운 존재처럼 느껴졌다. 나의 말이나 글로 저 아이에게 어떤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거꾸로 나는 저 학생의 말이나 영상을 어디까지 ‘알아먹을’ 수 있을까?
중국어로는 ‘더우인(抖音)’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미국 지역에서는 틱톡이라 불리는 쇼트클립 SNS는 세계 무대에 선 지 이제 2년을 갓 넘겼을 뿐이다. 모기업인 중국의 ‘바이트댄스’는 1983년생 젊은 창업가 장이밍이 2012년에 설립해 2018년 기업가치 85조원 세계 최대 규모의 거물 스타트업이 되었다. ‘우버’의 시장 가치(700억 달러, 약 78조원)를 뛰어넘은 중국 스타트업으로 자주 소개되지만 우버보다 훨씬 이해하기 어려운 서비스다. CEO인 장이밍은 난카이 대학에서 소프트웨어를 전공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쿠쉰 여행 검색 엔진 회사에 다니면서 온라인 정보 유통에 눈을 떴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정보들은 이용자의 절반이 10대인 이 신생 서비스의 정체를 이해하는 데는 거의 도움이 안 된다.
올해 초, ‘틱톡’ 어플을 한 번 깔아봤다. 대부분 나보다 어린 또래가 등장해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동작, 배경음악으로 15초를 보내다 사라졌다. 그게 전부였다. '쇼트클립 SNS'라고 적혀 있었는데 네트워킹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수 없었다. 중국에서 사온 샤오미 휴대폰으로는 중국 버전인 ‘더우인’을 깔아봤는데 여긴 훨씬 더 정신이 없었다. 방금 나온 음악이랑 동작이 이전 영상과 같은 건지 다른 건지조차 헷갈렸다. 하지만 진짜 앉은 자리에서 40분 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그 중독성에 대해 옆에 앉아 있던 동료 직원에게 설명하려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한국 서비스 홍보 직원 분을 만나 그동안 궁금했던 질문들을 쏟아냈다. 틱톡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서비스고, 지금 또 뭘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갈 생각인지에 대해서였다. 그에 대해 오랫동안 답변을 들었지만 그 자리에서 이해된 것은 사실 몇 가지 없었다. 먼저 ‘챌린저’ 모델로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있다는 것과 틱톡에 올라오는 영상들의 ‘무중심성’에 대한 부연설명들이었다. 틱톡의 네트워킹은 먼저 자신을 ‘과하게’ 드러내야 시작된다.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에 비해 과장되고 즉각적인 자극을 주는 제스처와 사운드가 필수적이다. 15초 영상의 성패는 처음 3초 안에 결정되고, 소통의 내용보다는 시선을 사로잡는 재치와 유머의 포맷 자체가 중요하다.
넷플릭스의 스킵 버튼이 위아래로 달려 있다. 세로 영상은 거의 무한대로 새로운 게 올라온다. 원치 않는 건 보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건 얼마든지 있고,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10대는 텍스트를 좌우로 읽지 못한다는 연구결과를 들었다. 사각형의 종이를 위아래로 훑으며 눈에 띄는 정보만 입력하는 것이 요즘의 ‘읽기’다. 틱톡은 수많은 엔지니어를 통해 매일 새로운 ‘스티커’와 무료 bgm, 다양한 영상 편집 효과를 올린다. 유저의 절반인 10대들은 거리낌 없이 새로운 연장들을 사용해본다. 시시각각 새로운 시도들이 나타나고, 새로운 유행을 만든다. ‘박자 맞추려고 녹화만 30분 걸렸네요’ 한글날에 대한 챌린지를 위해 게임 화면 속 3D이미지로 블록을 쌓은 한 유저의 설명이었다. 이들에게 30분은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15초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 상당히 많은 공을 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진지해지지는 않는다. 마음에 드는 영상이 나올 때까지 집중해보는 것이다.
어른들은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 창조적인 아이디어나 창의적인 사고방식을 너무 쉽게 주문한다. 자판기 음료처럼 젊은 사람들에게 뽑아먹으려 한다. 심지어 그 귀한 걸 공짜로 주길 요구한다. 하지만 정작 그런 귀중한 자원을 만들어 내는데 도움이 되는 ‘도구’나 ‘모방 사례’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한다. 틱톡은 10대들의 거대한 동영상 공구함이다. 그 안에서 새로운 빌딩을 쌓아올리거나 로케트 우주선을 만들면서 그들만의 우주를 만들어내고 있다. 틱톡은 질리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편집 도구들을 쉴새 없이 제공한다. 단순한 동작을 따라하다 보면 새로운 게 나온다. 도화지 한 장을 주고 미래 사회를 그려보라는 주문보다 친절하고, 실제 도움이 된다.
틱톡은 1분짜리 영상도 서비스한다. 하지만 15초를 마당처럼 뛰어놀던 사람이 만든 1분짜리 영상과 60분에도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지 못하는 사람이 만든 1분의 차이는 클 것이다. 새로운 영상 문법에 익숙한 Z세대가 얼마 안 있어 20대 30대 40대가 된다. 최근 언론사 YTN이 틱톡 공식 계정을 만들었다. 날씨 예보를 2배속으로 빠르게 읽어 15초짜리 영상을 만드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일주일 만에 구독자가 1천명 늘었다고 한다. 이렇게 반응속도가 빠른 SNS는 처음이라고 한다. 오늘 날 뉴스가 10대에서 ‘반응’을 이끌어냈고 그 속도까지 빠르다니. 진짜 업계의 미래를 생각하는 이들에게 '감동적인 성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