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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May 16. 2020

3. 미국의 힘 예일 로스쿨

예일은 뭐가 다른가

  법관에 관련된 책을 읽어보자 했을 때 처음 추천 목록에 올랐던 책이다. 전 대검 차장 검사였고 지금은 삼성의 준법감시위원으로 선정된 인물이 쓴 '고전'이다. 법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을 읽어봤을 책. 미국을 대표하는 로스쿨에서는 법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는지 궁금한 사람들의 눈을 띄워준 책이었다. 나는 법을 공부한 사람은 아니지만, 90년대 현직 검사의 미국 진출의 선구자로서 큰 역할을 한 인물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지금처럼 외국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한국에 들어와 활동하는 법관들이 많던 시절도 아니었고 하버드가 아닌 예일에서 공부한 사람은 더욱 귀한 때였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선진의 문물처럼 느껴지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법 현실과 비교해 냉정한 시각을 찾고자 했고,  영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가능한 많은 것들을 소화하기 위해 그가 했던 노력은 대단했다.


 미국 역대 대통령의 60% 이상이 법률가 출신이다. (트럼프는 와튼스쿨 경제학과 출신이다) 고등학교 때 힐러리 자서전을 읽으면서 왜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 법을 공부하려는지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다. 하지만 법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엄청난 권력을 의미한다. 개인의 운명을 넘어 사회의 미래를 그려나가는데 법학 지식은 모국어만큼이나 필수적인 역량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미국 사회를 움익이는 예일 로스쿨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그래서 미국이란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수많은 리더들이 공부한 한 대학의 한 학기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 흥미롭다.


 가장 놀랐던 것은 예일대에서는 성적의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4개의 grade가 있지만 형식적인 것이고 사실상 pass or fail로 성적이 나온다고 한다. 세계적인 명문대학에서 그 많은 인재들이 모여 순위경쟁을 하지 않는다고? 개인의 등수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적 목표'를 향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예일대의 문화를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사시를 패스해 검사가 된 봉욱 검사장이 서른 다섯의 나이에 예일대에서 만난 학생들의 모습 또한 충격 그 자체였다. 학생들은 1등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함께 최고가 되기 위해 공부했다. 수업에 빠진 동료에게 기꺼이 노트필기를 빌려주고, 남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밤새워 예습을 해왔다. 학력고사에 사법시험에 언제나 등수의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그는 그 신풍경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예일대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미국이 어느 나라보다 대학 간판을 중요시 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한 해 600명을 뽑는 하버드에 비해 150명의 소수 인원을 뽑아, 학생 1명당 6명의 교수가 지도한다. 엄청난 학비와 생활비로 졸업한 뒤에도 10년은 억대의 빚을 갚아나가야하지만 그 학생이 공무원이 되거나 사회봉사를 위한 길로 나가면 학교는 그 빚을 없던 걸로 해준다. 국제법 전문가로서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의 연방 대법원 대법관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고홍주 교수도 예일대에 있는데 그의 철학에 대한 짧은 글이 실려 있었다.


"예일 로스쿨처럼 우수한 학교의 재능있는 학생들은 사회에서 가장 고통받는 이들에게 봉사할 의무가 있었다. 아이티 난민들만큼 가장 명석한 학생들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가장 낮았다. 고 교수는 예일이 총잡이나 양성하는 다른 로스쿨과 같은 길을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봉사를 위해서 공부하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도덕적 목표를 가진 로스쿨을 상상했다"


- <미국의 힘 예일 로스쿨> p.48


 이 목표가 실제 예일대의 이상이든 과장된 것이든 상관 없었다. 하지만 예일 같은 곳이 어딘가에 존재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자신의 미래만큼이나 타인과 사회, 그리고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의 인생을 소중히 여기고 이들의 고통을 멈추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지성과 자원을 총동원하는 수재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들을 양질의 환경에서 기르고, 판을 깔아줘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울타리를 제공하는 학문의 전당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런 곳이 실재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 책이 묘사하는 예일대의 모습은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멋진 청사진이었다.  


 어딘가에는 내가 있은 곳과 '다른 곳'이 있었으면 한다. 사는 게 다 비슷하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어딘가에는 존재하고 있었으면 한다. 덮어놓고 서구의 법학 교육과 전통, 그들이 가진 법 갑정을 부러워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에 발을 붙이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가슴 설레게 상상해보지도 못한 좋은 것들을 하나씩 이뤄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검찰청의 유전자 감식 기법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로스쿨 제도를 통해 다양한 현실 경험으로 미래사회를 이해하고 새로운 법질서를 세워나갈 인재를 길러내고자 시도하고 있다.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어떤 곳인가를 그려볼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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