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장구를 치기보다 물을 밀어내기
시간 기록이 가능한 시계를 차고 수영장에 들어갔다. 물 속에서도 잘 보일 수 있도록 조명을 최대 밝기로 켜두고 손목에 단단히 채워두었다. 어제 말한 '달성 가능한 작은 목표'의 힘을 다시 한 번 시험해볼 기회였다. 거리가 잡히진 않았지만, 이 수영장의 편도 길이는 25미터. 왕복 한 바퀴를 돌면 딱 50미터가 나온다. 그리고 레일 끝에 도착할 때마다 랩타임을 찍으면 나만의 기록이 완성되는 것이다.
한 바퀴에 1분 30초를 목표로 두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30바퀴를 돌아야 1.5킬로미터가 채워진다. 사람이 없는 점심시간이어서, 나 혼자 레일 하나를 썼다. 마음 놓고 물을 차고 때리며 앞으로 나갔다. 처음에는 1분 30초를 넘어가던 기록이 20초대로 점점 줄어들었다. 숨이 가빠왔지만 한 바퀴마다 여지없이 찍히는 랩타임은 또 나를 쉬지 않고 헤엄치게 만들었다.
기록이 몇 초 단위로 늘었다 줄었다. 되돌아오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물 속에서 생각하는 여유가 생겼다. 무엇이 기록 몇 초를 좌우하는가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턴을 돌 때 발로 힘껏 벽을 차지 않아서일까. 중간에 숨을 고르느라 속도가 줄었던 걸까. 두 팔과 두 다리의 힘과 관련이 있는 걸까. 사지와 함께 고개를 들어 호흡하는 순간순간마다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게 전부는 아닐 테지만, '물 잡는 법'이 중요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앞으로 나아가려고 허둥댈 때는 양 팔이 허우적허우적 빠르게만 뻗어나간다. 그러면 물이 제대로 잡히지 않고 오히려 내가 밀려나는 느낌이 든다. 손바닥과 팔이 물을 무겁게 눌러 한 바퀴 돌려 내보내는 느낌. 그 무게감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달라졌다. 조금이라도 빨리 물장구를 치려 철퍽철퍽 물을 쳐대면 외려 힘만 더 든다. 중요한 것은 물 밖에서가 아니라, 이미 수면 아래로 내려온 팔이 얼마나 '지긋이' 물을 눌러줄 힘을 갖고 있는가였다.
마지막 10바퀴를 돌 때쯤에야 이것을 터득했다. 조금 지쳐 몸에 힘이 빠진 뒤에야 팔을 재빨리 휘두르는 것보다 물 속에서 누르는데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1킬로 정도 헤엄친 덕에 팔다리와 호흡은 안정적으로 조절이 되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면서 물 속에서의 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그 결과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 기록이 1분 10초대로 들어섰다.
헤밍웨이의 말이다. 글의 시작도 중요하지만, 퇴고는 더욱 중요하다는 뜻이다. 노인과 바다는 400번의 퇴고를 거쳐 완성되었다고 한다. 처음 기록계를 켜고 기세 좋게 물살을 가른 건 초고를 쓰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같은 구간을 여러 번 반복해서 지나는 동안 나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기록을 줄이기 위해, 힘을 더 남겨둘 수 있게 고민을 거듭했다. 40여 분간의 시간이었지만, 호흡 하나, 물살을 헤치는 움직임 하나 곱씹어보는 과정에서 몸을 최적의 방법을 체득했다. 그건 의식적으로 이루어진 과정이라기보다, 반복과 집중의 결과물로 얻어진 사후적인 결론이었다.
요란하게 물장구를 치기보다 '물아래서' 끝까지 눌러주는 힘이 중요하듯, 글을 어찌 완결 짓는 것보다 끌까지 헤아리고 헤아려 더 좋은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 시간은 내 마음을 조급하게 할 수도 있다. 물 속에서는 더 빨리 팔을 뻗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가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하지만 끝내 전체 기록을 좋게 만든 것은 안정된 속도로 마무리까지 야무지게 팔을 뻗어낸 근육의 힘이었다. 그것은 의욕과 열정보다는 반복과 집중의 산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