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7 생활복싱대회 도전기
운동을 하면 한 달에 한 번, 위기는 꼬박꼬박 찾아온다. 단순히 생리적인 몸의 변화 때문이지만 파급효과는 어디선가 누군가 내 하루에 장난질을 치고 있는 것 같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불편한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작은 일정 하나 매일 하던 사소한 업무 하나가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어쩔 수가 없다. 이런 날들이 며칠은 있기 마련이라 날짜가 다가오는 것을 꼽아보고 좀 더 마음을 다잡아 보는 수밖에 없다. 1년에 한번도 아니고, 1달에 일주일이나 되는 이 기간 동안 운동습관을 어떻게 유지하는지가 내 오랜 과제였다.
며칠째 몸이 무겁고 졸음이 쏟아진다. 물이 계속 들어가는 만큼 체중은 불어나고 아랫배는 쑤시거나 묵직하게 불편하거나를 반복한다. 새벽 5시 반에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하는데 그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진다. 시간이 10분 20분 밀릴 때마다 침대를 떠나는 게 더 힘들어지고 자괴감이 밀려온다. 차라리 잠이라도 푹 더 자면 모르겠는데 정신은 깨어있고 몸이 따라주지 않아 뭉개는 시간이 이어진다. 계획한 시간에 움직이지 못하면, 짐을 챙기는 것도, 운전을 해서 복싱장 앞까지 가는 것도 하나하나 너무 힘든 일처럼 느껴진다. 원래 해가 짧아지고, 새벽공기가 차가워지는 이 시기가 일어나기 힘든건 맞지만 거기에 또 하나의 묵직한 장벽이 세워진 기분이다.
허들을 몇개를 넘어야 복싱장에 들어선다. 일단 옷을 갈아입고 줄넘기를 하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순조롭게 시간이 흘러간다. 코치님이 시키는대로 자세 연습을 하고, 그것을 몇 세트 더 반복하고, 샌드백을 치고, 체력운동을 한다. 한 시간 동안 땀을 흘릴대로 흘리고 나면, 오늘 하루도 어떻게든 잘 시작했다하는 생각이 든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좁은 탈의실에서 출근복으로 갈아입고 나면 또다른 과제가 시작된다. 8시까지 올려야 하는 일정을 정리해서 카톡방에 올리고 시동을 걸어 출근지로 네비를 찍는다. 30분에서 50분 정도 걸리는 시간 동안 도로 위의 택시나 트럭, 갑자기 바뀌는 차선과 같은 변수들이 없기를 기도한다. 그런 일상적인 충격에도 쉽게 우울감이 밀려오는 이 시기엔 모든 것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라게 된다.
복싱대회 도전기에는 운동에 대한 이야기만 적게 될 줄 알았는데. 사실 운동 뿐 아니라 운동을 하러 가는 길, 운동을 마치고 회사로 출근하는 길, 하루 동안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무사히 저녁을 먹고, 또 가벼운 마음으로 잠이 드는 일, 이른 새벽에 산뜻하게 눈을 뜨는 일. 이 모든 과정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야 한다. 매일 운동을 하겠다. 그리고 2달 뒤에 대회를 나가겠다 하는 일들은 이렇게 매일의 사소한 위기들을 겪어내고, 충격 하나 자극 하나에 자포자기하지 않는 마음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대학 시절, 어린 나이에 고시에 합격한 동기에게 했던 질문이 생각난다.
"공부하기 싫거나 진짜 지쳤을 때 기분 전환은 어떻게 해?"
"그냥. 그냥 공부를 계속 해"
결국 건너뛴 하루는 그 다음날의 후회와 더 무거운 마음을 남기고. 그걸 충분히 경험하게 된 지금의 나이에는 힘든 때 몸과 마음을 달래가며 '그냥' 하는 선택을 신뢰하게 된다. 이러다가 또 하루는 와장창 폭발하는 날이 있겠지만, 그날까지는 어떻게든 덤덤하게, 매일 매일의 시간을 내 몸에 채워나간다. 사실, 별 수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