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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Nov 29. 2020

마흔이 된 나는 어떤 모습일까

일주일에 30시간만 일하기

        

  친구들과 가평 캠핑을 갔던 어느 주말이었다. 퇴근하고 부랴부랴 조용한 산골에 도착한 우리들은 고기에 와인을 배부르게 먹고 뜨끈한 아랫목에 모였다. 자정이 넘은 시간 이어지던 수다 끝에 우리는 하나의 질문에 돌아가며 답을 해보기로 했다.

    

Q. 마흔이 된 나는 어떤 모습일까     


  서른한 살의 나이로 2020년을 살았던 남편은 9년 뒤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상상했다.      


A. 일주일에 30시간만 일하면서 살고 있을 것 같아.     


  일주일에 서른 시간. 월화수목금요일 하루 6시간씩. 점심 때 일을 시작해 해가 지기 전에 마무리하는 것. 아니면 3일만 온종일 일하고 나흘을 쉬는 일주일이 될 수도 있다. 매주 월요일마다 52시간을 넘나드는 근무일지를 쓰고 있는 지금의 삶과 비교해보면 꿈만 같은 삶이다.      


  그럼 그 나머지 시간은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A. 아침마다 수영이나 복싱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일 년에 두 달은 여행을 다니면서 살거야. 중요한 건 우리 집에 15미터 길이 수영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     


  나의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남편이 정한 ‘소박한’ 근무시간에 나머지 시간은 어떻게 채울 것인지를 상상해봤다. 주 5일에서 6일 근무를 하는 나는 올 한 해 동안 정말 많은 일을 벌렸다. 우리만의 결혼 전시를 준비했고, 낡은 주택을 리모델링해 신혼집을 꾸몄고, 새벽엔 복싱을 배우고, 평일 저녁에도 틈만 나면 핸드팬을 배우거나 책모임 시간을 가졌다. 주말마다 바다 별장에 가서 서핑을 하고 일요일 밤 늦은 시간 서울에 돌아와 곯아떨어지는 일 년을 보냈다.     


 근육과 의욕, 호기심과 야망에 하루하루의 시간을 증기선처럼 달리고 있다. 지금 하는 일이 즐겁고 너무나 많은 기회와 멋진 사람들로 나를 이끌지만 언젠가는 내 하루를 온전히 내가 계획한 시간으로 채우고 싶은 욕심이 있다. 언젠가 하고 싶었던 여행가이드의 꿈과 나만의 브랜드 채널을 갖는 것, 매달 해외에 나가 나와 다른 매력적인 일상을 사는 이들과 어울리는 시간들을 가능한 많이 갖고 싶다.      


 올해 마지막 휴가인 이번 일주일 동안 정말 많은 생각들이 뼈대를 갖게 되었다. 별장 일기는 별장을 꾸미게 된 지 일년 뒤에나 쓰기 시작했지만 이번엔 조금 일찍 시작해보려고 한다. 저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도로의 소음이 올라오지 못하는 해변 언덕의 땅을 만나게 되었다. 차로 3분 거리에 국제공항이 있고, 인근에 커다란 리조트와 새로 지어질 대형 상권이 토대를 다지고 있는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잔뜩이지만 조금 더 착실히 시간을 보내보려 한다. 오늘은 캠핑장의 그 한마디처럼 선언과도 같은 짧은 기록을 남긴다.


 Metis 지혜의 여신이라는 뜻의 내 매거진 제목은 몇 년 전 읽었던 책에서 따온 것이다. 메티스란 한 물고기가 자신이 살던 연못에서 매일 수면 위로 뛰어올라 내다본 세상에서 그 너머의 것을 본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직접 가보거나 본 적은 없지만, 매일 한 순간씩 자신이 있던 곳보다 높은 곳으로 뛰어 올라 내다본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하나의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이미지가 되어, 결국 그 물고기는 한 번의 도약으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 정확히 넘어갈 수 있게 된다는 개념이다. 2020년 11월 마지막 일주일은 내게 그런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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