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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Dec 13. 2020

파이어족, 멘토를 만나는 게 중요한 이유

주변에 '땅 이야기'를 할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는 삶을 살기로 했다. 결혼 전부터 확고한 마음이었고 5년째 만남을 이어가면서 그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찾아오는데,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아직까지 우리 주변에 ‘딩크’로 10년 이상 잘 지내는 커플이 없다는 사실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마 죽을 때까지 아이를 갖지 않는 선택에 대해 많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에는 우리 두 사람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아마 우리의 선택이 적어도 우리 두 사람에게는 잘 맞는 것임을 쉬지 않고 증명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럴까. 신혼부부가 결혼 몇 년 만에 아이를 낳고, 육아의 힘든 시절을 지나고, 아이는 자라 성인이 되는 플롯에 대해서는 눈만 돌리면 너무나도 많은 멘토들이 있다. 그 멘토들의 존재 자체가 아이와 함께 하는 인생에 대한 확고한 논증을 담보한다. 하지만 아이 없는 삶에 대한 서사는 턱없이 부족하다. 10년쯤 부부 두 사람만 살다가 결국 느즈막이 아이를 낳기로 하는데 어떤 어려움과 생각지 못한 행복이 있더라 하는 정도의 이야기는 있다. 하지만 아이가 없이도 두 사람의 인생을 만족스럽게 이어가는 인생의 선배는 아직 충분히 만나지 못했다.      



 마흔 살의 은퇴, 파이어족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선택한 길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동시에 막연한 불안감이 마음을 잡아먹는 때가 오는데, 이 역시 아직 우리가 멘토를 충분히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그 미래의 구체적인 부분을 상상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이미지를 얻지 못한 것이다. 과연 나이 마흔에 은퇴하는 게 가능할까. 그리고 그 다음의 인생은 우리의 생각만큼 즐거울까.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인 것은 맞을까? 정말 그 길을 목표로 삼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어떤 선택들을 내려야 좋을까. 수많은 물음표 가운데 주변에 누구에게도 답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이 너무 답답했다. 그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의 한마디가 얼마나 큰 확신의 씨앗이 될 수 있는지 깨닫게 되는 일이 있었다.      



  40대의 딩크, 자신만의 수익 파이프라인을 가지고 이제는 새로운 꿈의 집을 짓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과 오랜만에 차를 마시게 되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진 남자 사장님은 손수 마련한 지하 창고 겸 라운지 바에서 우리에게 직접 원두를 내린 커피를 내어 주었고, 그의 오랜 파트너인 여자 사장님은 수도권에서 7년째 운영 중인 베이커리의 빵을 함께 꺼내 주었다. 매주 서울과 강원도를 오가는 두 분은 여러 사업장의 일로 바빠 만나 뵙기가 어려웠다. 자주 오지 않는 기회인만큼 그동안 묻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쏟아내듯 질문했다. 지금 우리가 알아 보고 있는 땅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그 두 사람도 우리와 비슷한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았고, 우리보다 먼저 더 다양한 땅들을 보러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선택에 더 깊은 확신을 주는 이야기가 많았다. 왜인지 용기와 힘이 되는 말들이었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과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내 주변에는 땅을 보러 다니는 친구가 없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지향점이 너무 달랐다.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마음으로 같은 지역의 땅을 보러 다닌 사람들의 이야기는 귀에 쏙쏙 들어왔다. 서로가 새롭게 얻은 정보를 공유하며, 비슷한 이미지의 미래를 서로에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숨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며칠 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가시고, 우리의 선택을 더 구체화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얻었다. 그저 나이가 많다고, 가진 것이 더 많은 사람과의 대화여서 느낄 수 있는 안도감이 아니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에 몇 걸음 먼저 다가가 있는 사람들이었고 지금 우리에게 현실적인 조언이 되는 정보들을 담백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어른들이었다. 이들처럼 좋은 멘토가 곁에 있어야, 끝까지 조기 은퇴의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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