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천방지축 얼렁뚱땅 지나갔다. 눈꺼풀이 자꾸 내려와서 잠들기 전에 서둘러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저녁 먹고 침대에 앉기까지 하루종일 우다다 걸어 다녔다. 나중에는 좀비처럼 스르륵 걸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딱 마음이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힘들었다.
“그거 게임 같은 거냐?” 바디프로필을 찍겠다고 살을 뺀다는 딸에게 엄마가 묻는다. 생각해보면 몸으로 하는 게임에 가까울 수도 있다. 내 캐릭터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지, 또 새로운 경험치를 쌓아간다는 점에서? 크고 작은 퀘스트가 이어지고 그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적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온자는 점에서도?
오늘의 난이도는 중상 정도였다. 아침으로 챙겨간 훈제 닭가슴살은 점심시간에야 허겁지겁 먹을 수 있었고, 기가 빨려서 결국 스타벅스 토스트 한 조각에 기운을 얻었다. 터덜터덜 퇴근해서는 남편이 차려둔 양배추카레에 스팸 한조각도 먹었다. 오늘은 이 정도는 먹어줘야 타산이 맞을 것 같은 날이었다.
게임에 푹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하루하루 랜덤으로 정해지는 난이도에 나름 잘 대처해나가는 게 재밌는 것 같다. 스스로 이만하면 됐다 하루를 무사히 넘긴 게 기특하기도 하고 어제와 달라진 내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도 좋다. 재택 할 때처럼 온전히 짜여진 식단은 아니었지만 딱 배부르기 전에 멈출 수 있다는 게 새삼 긍정적인 변화로 다가왔다.
내가 하는 게임이 어딘지 재밌어 보이는지, 남편도 달라졌다.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만 있던 사람이 갑자기 내 요가매트를 꺼내더니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노올라운 변화다.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처음 사귈 때 클라이밍을 열심히 하는 모습에 반했는데, 몇 년 만에 자발적으로 몸을 푸는 모습이 신기했다.
이 게임의 끝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사실 뭐든지 게임처럼 하면 어깨에 힘들어갈 일도 없고, 그렇게까지 서운할 일도 없어 좋을 것 같다. 언제든지 다음 판을 시작하면 되니까. 몸도 마음도 언제나 새로 버튼을 누를 만큼의 여유는 남겨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