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명 청년의 연출
17xx년 10월 30일. 목요일 조간 단신
: 38세, 무명 극작가 마라(Marrat) 장기 투숙 중이던 고급 호텔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 자살 이유는 생활고로 추정.
마라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청소부는 그의 만족한 표정에 한 번 놀랐다. 그리고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깃펜과 양피지를 놓치지 않은 양손에 또 한 번 놀랐다. 부드러운 녹색 천으로 하반신을 가리고, 새하얀 시트엔 진홍빛 피 몇 방울만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스스로 목 아래를 단도로 찌르고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린 남자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지만 동시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매혹이 있었다. 사실 이 극적인 장면은 철저히 연출된 것이었다.
마라는 자신의 매력을 발견한 17살때부터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지은 미숙한 플롯과 캐릭터들은 뭇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사실 마라 자신의 잘생긴 얼굴과 매끈한 몸매가 더 큰 역할을 했었던 것이었다. 결국 21년간 수북이 쌓인 그의 작품들은 친구들 사이에 소소한 재미를 주었을 뿐 극장에 걸릴 기회는 얻지 못했다. 38살이 되던 어느 날, 자신의 재능 없음을 인정하게 된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알릴 새로운 계획을 떠올리게 된다.
전 재산을 털어 최고급 호텔에 투숙한 그는 하루 이틀, 일주일에 거쳐 외출에 나선다. 역시 최고급인 깃펜과 짙은 녹색 천, 그리고 값비싼 향유를 차례로 구입해 방으로 돌아오는 일과였다. 당장 먹을 빵 값도 남기지 않고 멋진 장식품을 여기저기서 구해 모은 그는 호텔 방에 다시 앉아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구상했다. 신보다 자기 자신을 더 믿고자 했던 그였지만 종교적 상징을 여기저기 담기로 했다. 보는 이에게 어떤 식으로든 해석의 여지를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순교자의 이미지, 레토릭과 문장을 숭배하는 예술가. 그렇게 비극적인 하나의 장면이 완성되었다.
17xx년 10월 29일 저녁. 마라는 고급 양피지 위에 자신의 이름을 크게 적는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자신이 썼으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여러 작품들의 제목을 함께 적었다. 마라의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은 그가 연출할 수 있는 최고의 장면이었던 것이다.
죽음을 통해 마라는 유명해졌다. 사람들은 그를 ‘美王’이라 부르며 추억했다. 상점에는 그가 생전에 썼던 작품집이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마라가 유서의 형식으로 남긴 작품의 목록은 그대로 서점의 베스트 셀러 목록을 차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