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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Jan 27. 2016

ISO 감도와 <유혹하는 글쓰기

카메라의 '적정 노출'과 스티븐 킹의 '상황'

포커스, 셔터 스피드, 그리고 감도.

촬영의 기본을 배웠다. 피사체를 또렷하게 혹은 원하는 분위기대로 찍으려면 먼저 미세한 조정이 필요하다. 조리개를 열어 빛을 더 많이 담고, 셔터 속도를 느리게 해 빛에 노출되는 시간을 늘린다. 이 두 가지는 명확하게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감도'를 조정하는 일은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감도를 조절하는 원리에 대해 질문했지만, 그것은 화학적 변화의 과정이기에 알 필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감광 속도 = 감도'

뜻풀이를 찾아보았다. 빛이 반응하는 속도를 조절한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카메라의 감도를 높이는 일은 필름이 빛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조작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것의 표준은 ISO ** 를 사용한다. 빛에 더 민감하게 혹은 둔감하게 반응하게 만드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아직까지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막연했던 감도 조절의 효과를 결과물로 확인한 게 전부였다.


@ 왼쪽이 감도가 낮은 사진, 오른쪽이 높은 사진

바로 오른쪽 사진의 슈퍼 마리오처럼 감도가 높으면, 어두운 곳에서도 피사체를 촬영할 수 있다. 카메라가 적은 빛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 밝은 화면을 찍어낸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감도를 한껏 높인 화면은 입자가 뭉개지고 노이즈가 생길 확률이 높다. 우리가 성급하게 그림을 그릴 때, 확 연필선을 삐끗할 확률이 높은 것처럼 빛 입자 하나가 전체 사진을 망가뜨릴 위험이 높아지는 셈이다. 내 욕심대로 피사체를 눈에 띄게 찍어낼 수는 있지만, 그 사진의 퀄리티는 보장하기 어렵다.


반면 감도가 낮은 상태로 찍은 왼쪽 사진은 조금 섬뜻하다. 어둠 속에서 슈퍼마리오의 두 눈이  희번덕거린다. 이 사진의 경우 조금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피사체가 눈에 들어온다. 부족한 빛을 포기한 대신, 뭉개지거나 확 튀는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신경 써서 보기만 한다면 마리오 얼굴의 구석구석을 살피는데 더 적합하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결정을 해야 한다. 감도를 얼마나 높일 것인지, 조리개를 얼마나 열 것인지, 셔터 스피드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모든 조건을 '오토'로 해두고 여기저기 셔터를 누르는 사람이라면 전혀  상관없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매혹적인 사진을 찍기 위해 고심하는 이라면, '적정 노출'의 순간을 잡아내기 위해 갖은 애를 쓸 것이다. 하나의 조작이 가져올 효과와 위험성을 동시에 계산하여 완벽한 조건을 맞추고자 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 역시도 '적정 노출'을 가리키는 카메라의 기준선에 흔들리기 쉽다. 고성능의 기계적인 메커니즘으로 계산된 '적정 노출'을 제시해주는 기능이 이미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신호를 읽을 줄 알고, 작동 원리를 익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그 선에 딱 맞춰 노출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기계의 계산조차 완벽하지 않다는 데 있다. 카메라는 어디까지나 투입된 정보 값을 가지고 계산을 한다. 렌즈 앞의 피사체만 찍는 렌즈보다, 전체 촬영 현장을 이해하는 사람이 더 현명하다.


전문가들이 '수동 보정'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카메라의 자동 기능이 정해준 대로 조건을 맞추면 어느 정도 괜찮은 사진이 찍힌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그림과 미세하게 다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언제나 사소한 차이가 상품과 작품의 경계가 된다. 전문 사진가라면 주어진 비율을 쫓아가기보다 자신의 감을 더 신뢰해야 한다. 포커스와 셔터 스피드와 감도는 1,2 단위로 미세하게 조정된다. 그 조작의 황금 조작 배율은 오직 사진가 자신만이 알고 있다.


@ 트레일러 세탁실에서 작품 <캐리>를 썼다는 킹. 그는 자신의 소설 속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미저리>, <캐리> 등 공포 스릴러 소설의 대가인 스티븐 킹은 '플롯을 버릴 것'을 주문한다. 우리말로 줄거리라고 번역되는 플롯은 소설의 뼈대가 된다. 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무엇보다 이 줄거리를 잘 정해두고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킹은 그런 플롯이 결국 그저 그런 이야기만 만들어낼 뿐이라고 했다. 플롯을 따라가며 가공된 이야기는 진부하고, 재미도 없고, 무엇보다 '작품'이 될 가능성이  터무니없이 낮아진다. 짜인 플롯은 주인공의 생명력을 갉아먹고, 마치 인생에 '기승전결'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다르다. 몇 가지 특징을 가진 캐릭터를 특정 상황에 놓아두는 것만으로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전개는 줄거리가 없어도 재미있다. 그 상황 안에서 미세하게 변해가는 인물들의 행동과 성격을 쫓아가면서 작가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가고, 그 동물적인 감각이 발휘한 결과 작품을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카메라가 표시하는 '적정 노출'을 기계적으로 맞추는 일은 소설의 플롯을 미리 써두는 것과 같다. 카메라가 계산한 조건을 완벽하게 맞춘다 해도 내 뜻대로 사진이 찍히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촬영 현장은 시시각각 변해가며 수많은 변수가 나타난다. 그 사이에서 자신의 감각과 수만은 경험 지식을 가지고, 기계가 계산한 공식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작품'을 찍지 않을까. 이야기를 몇몇 플롯에 끼워 맞추기보다, 하나의 상황이 변해가는 과정을 유심히 관찰한 스티브 킹은 출판되기 무섭게 수천만 부씩 팔려나가는 초대형 베스트셀러들을 50여 편이나 써냈다.


@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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