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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May 06. 2021

32살 ‘기본형’ 머리 장착

“투블럭을 해보고 싶어서요”

머리카락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     


  딱 1년 전 이맘때쯤 숏컷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디폴트 여성 100인의 인터뷰-탈코르셋 운동이 무해한 이유>라는 유튜브 동영상을 본 직후였고, 그 날도 지금처럼 밤샘 철야 다음 몸과 정신이 피곤한 상태였다. 시간과 날짜, 오늘 하루 할 일에 대한 생각이 어지러울 때 문득 머리카락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걸 보면. 어떤 말과 행동만큼이나 내 인생의 어떤 평범한 순간에도 크고 작은 영향력을 미치는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헤어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입는 옷이나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옵션을 가지고 매일 일상적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선택과 결정을 반복하는데. 머리카락에 대해서는 일 년에 한 두 번 검색을 할까 말까 하다. 그렇지만 다른 어떤 것만큼이나 나라는 사람의 인상과 삶의 태도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부분이 머리 모양이지 않을까.     


 나흘 전 월요일 밤, 나는 퇴근길 차로 한 시간을 달려 한 살롱을 찾았다. 마포구 골목길에 위치한 이 곳은 1인 미용실로 여성 숏컷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몇 개 올린 곳이었다. 동네 미용실, 브랜드 미용실 여러 곳을 알아보던 중에 그래도 가장 마음이 가는 곳을 골랐다. 내가 왜 머리를 자르고 싶은지 구구절절 설명하고 납득시키지 않아도 될 만한 곳. 머리를 ‘대충’ 잘라달라는 뜻이 아니라 ‘기본형’ 머리를 깔끔하게 해달라는 뜻을 이해해줄 수 있는 곳. 내가 찾아 헤매던 그런 곳이라는 확신이 들어 집에서도 사십 분 거리에 있는 이곳을 찾았다.      

“고민 많이 하고 오셨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있던 나의 머리를 자르기 직전 선생님은 질문인지 선언인지 모를 말을 던졌다. 말을 마치는 동시에 ‘서걱’ 잘린 머리. 지난 4년 동안 기른 머리의 절반이 한 순간에 잘려 나갔다. 나도 모르게 “잠깐만요”라고 말릴 뻔 했지만, 곧바로 말을 삼켰다. 돌이킬 수 없다. 이제 그냥 내 결정에 몸을 맡겨야 한다. 기장이 달라질 때 1차 충격이 가실 때쯤 옆머리가 ‘위잉’ 바리깡에 밀리기 시작했다. 생경한 그 느낌에 2차 쇼크. 뭔가 잘못되어가는 게 아닐까 혼란스러운 차에 차가운 펌약이 두피에 훅 끼쳤다. 32년 만에 가장 짧은 머리가 되었다.      

 사실 20대 끝자락부터 해온 고민이었다. 서른 살이 되면 숏컷을 해봐야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틈틈이 떠올렸던 생각이 3년차에 접어들었다. 기를 수 있을 때까지 길러봐야지. 그래도 결혼식까지는 길러봐야지. 곱슬머리는 관리가 어려워 기르는 편이 낫지. 그렇게 예정에 없던 긴 머리 스타일을 유지해온 지난 몇 년이었다. 매일매일 긴 머리와의 신경전을 벌이던 지난 몇 달 동안 더 심해진 스트레스가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방바닥에는 어딜 가든 내 긴 머리카락이 잔뜩 고양이 털이 또 잔뜩이었다. 샴푸를 할 때마다 한웅큼씩 빠지는 머리에 노화에 대한 스트레스. 나 자신을 잘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채감에서 오는 스트레스. 무엇보다 바다에 들어갈 때마다 긴 머리 때문에 겪는 불편이 너무 컸다. 아무리 잘 묶어 보아도 당기고, 얼굴을 찰싹 때리고, 파도에 휩쓸릴 때 거슬리는 게 싫었다. 머리 말리는 게 큰일이라 저녁에 후딱 감고 자기고 어렵고 여러모로 피곤한 일이 많았다.     


 그날 저녁은 유난히 두통이 가시지 않는 날이었다. 일 때문인지 생리 전 증후군 때문인지 골치가 너무 아파서 얼른 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생각이 극에 달했다. 미용실에 앉아서도 잠깐 고민하긴 했지만 자르고 나서도, 자르지 않아도 후회할 건 매한가지일 것 같았다. 지난 몇 년 동안 원 없이 길러봤다. 긴 머리에 대한 로망은 이제 그만 해도 될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같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부작용이 찾아오더라도 지금의 상태를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렇게 ‘서걱’과 ‘위잉’을 거쳐 디폴트의 머리가 되었다.      


 ‘과연 잘 어울릴까’를 걱정하던 마음은 점점 짧은 머리의 장점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일단 머리를 자른 다음 날 체중은 0.9키로그램 줄어 있었다. 1킬로그램 가까이 줄어든 머리카락의 무게는 몸의 지방이 줄어든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복싱장에서 운동을 하면서 확실히 느꼈다. ‘가볍다’라는 말로 다 표현될 수 없었다. 머리 뒤쪽에 묵직한 부피감. 몸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무게감이 사라지면서 움직임에 ‘자신감’이 붙었다. 내가 이렇게 빠르게, 거침없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머리카락이 흔들릴 것을 생각하지 않고 빠르게, 더 빠르게 좌우로 몸을 돌릴 수 있었다. 주먹을 뻗을 때도 거침이 없어졌다. 이런 변화는 머리를 잘라보지 않고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나 자신이 머리카락의 움직임에 그렇게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다는 사실에 대해 난생 처음 자각했다.      


 내 머리 소식을 알게 된 친구가 곽정은 씨의 유튜브 영상을 한 편 추천했다. <[ep.47] 일생에 한번은 숏컷을 해봐야할 10가지 이유> 이 영상을 보면서 지난 며칠동안 문득문득 들었던 생각에 대해 한번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말에 힘이 실리고, 꾸밈에 드는 시간과 노력이 줄고, 운동하는 순간 ‘살아있다’는 느낌이 진해진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이런 새로운 기분으로 또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해볼까. 어떤 새로운 일들을 벌려볼까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부푼다. 기본형의 짧은 머리가 된다는 것은 뭐 이렇게까지 큰일일까 싶지만 생각보다 큰일이었다. 5월의 봄날에 이만큼 멋진 변화를 만끽할 수 있어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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