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한량이 되겠다는 꿈
3년 동안의 별장살이가 올해 여름이면 끝이 난다. 이제 꼭 한 달 남은 별장에서의 마지막 휴가를 어떤 마음으로 보내게 될까.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우리의 삶에 잘 맞춰진 공간을 떠난다는 생각은 지금 당장 깊이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아쉬운 마음으로 흘러간다. 이참에 계절이 지난 옷을 잘 개어 정리하듯, 무언가를 갈무리하고 싶지만 손이 굼뜨다. 이렇게 마침표를 찍어버리면 끝에 대한 생각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질 것만 같다.
우리 보다 한 해 먼저 같은 아파트에 별장살이를 시작했던 자매는 이제는 이곳 로컬이 되었다. 동네 사람들의 소식을 한가득 알고, 집을 지을 때나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찾아갈 수 있는 동네 친구들이 손가락에 넘친다. 그들이 가꾼 공간은 첫 모습부터 훌륭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매년 더 멋이 들어간다. 서울에서도 맛보기 어려운 맛있는 수제케익과 커피를 마시기 위해, 산으로 감싸 앉은 잔디밭의 여유로운 풍경을 만끽하기 위해 생각날 때마다 찾게 되는 곳이다.
“왜 더 일찍 내려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한량 같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인연은 귀하다.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해서 그것이 ‘일’일 필요는 없다. 하늘과 파도가 좋은 날 서핑을 하고, 해변에서 말을 타고, 바람이 좋으면 요트를 타고 나가고 그렇게만 지내도 시간은 날아가듯 우리를 스쳐간다. 이제는 꽤 유명해져 성수기 예약은 걱정 없이 꽉 차는 스테이를 운영 중이지만 더 완벽한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하다. 그걸 욕심이나 헛된 바람이라 뭉개버리지 않고 여느 꿈처럼 노력해서 이뤄나가고 싶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닿지도 않았는데 벌써 즐거움이 넘친다. 올해로 4년째 기사문 바다를 오가며 쓴 기름 값이 얼마일까. 어느새 바다에 나가면 눈에 익은 얼굴이 많다. 샵을 가든 해안가를 가든, 까페나 음식점을 가든 반가운 얼굴들이다. 보드를 타고 나간 바다는 아파트 놀이터 같은 느낌이다. 그저 반가운 사람들이 일렁이는 파도에 함께한다. 서울의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이렇게 편안한 관계를 누리기 어렵다. 같은 학교, 같은 회사를 다니거나 비슷한 동네에 살지 않아도, 매주 주말이면 이렇게 모여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기적처럼 감사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지금도 일주일 중에 하루 이틀은 이곳에서 머문다. 이제 아파트 별장은 사라지겠지만, 샵에 머물든 바닷가 텐트에 머물든 이곳에서 쌓여온 인연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새로운 가족이 생긴 기분이다. 부모 형제는 아니지만 서로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끊임없이 미친다.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기도 하고, 진짜 가족처럼 마음이 불편해지는 시간도 겪게 된다. 사람들이 있으면 집이란 공간은 어떤 모습이든 크게 상관없을 것 같다. 이 동네에 오면 느껴지는 편안함과 들뜬 즐거움, 넉넉한 여유와 술잔에 농담이 오가는 그런 시간은 그대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