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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Feb 02. 2016

4.13 총선, 좌표부터 제대로 찍기

41번째 달리기

@ 좌표가 잘못 설정된 기록
400미터 1분 기록은 백년 전이었으면 올림픽 우승 기록이다.



아침 기온이 뚝 떨어졌다. 스트레칭도 충분히 했고, 목도리도 장갑도 빠트리지 않았다.   

기록을 위해 시계 전원을 켜고 달리기 시작했다.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중간에 멈춰서지 않고 반환점을 돌아 나왔다. 가슴께가 뻐근함이 느껴졌지만, 열심히 달린 것이 아까워 끝까지 속도를 유지하려 애썼다. 6킬로미터 기록을 알리는 시계의 진동에 곧바로 멈춰서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떨어진 기온 속에서 만족스러운 달리기였다.  


스트라바에 기록을 옮긴 뒤 핸드폰으로 확인했다. 2번째 최고 기록 3개. 은메달이 3개나 나왔다. 오랜만에 연달아 나온 기록이라 기분이 좋았다. 끝까지 열심히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오늘의 나는 그렇게 빨리 뛰지 못했다. 바로 이틀 전 날씨가 아주 따뜻해 가볍게 뛴 날도 이렇게 기록이 좋진 못했다. 스트라바를 통해 내 기록을 살펴본 친구가 한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지도에 잡힌 나의 위치가 어딘지 이상했다. 집에서 출발해 집으로 돌아온 나의 경로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애초에 GPS가 나의 위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은메달 3개의 기록은 미심쩍은 게 되었다. 언젠가 같은 이유로, 올림픽 금메달 수준의 기록을 찍어낸 적이 있었다.  


@ 무용지물이 된 기록


시작 좌표가 틀리면 모든 게 어긋난다. 올림픽 경기라면 부정 출발에 실격 사유와 같다. 개인의 기록이라 해도 좌표가 잘못된 기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음 경기를 위한 전략을 짜는 데에도 쓸모가 없고, 엉터리 최고기록은 괜히 연습 중의 마음가짐을 해이하게 만들 뿐이다.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먼저 기록이 정확하게 측정되고 있는지 확인한 다음의 일이다.      


@ 아이오와 주 코커스, 버니 샌더스


미국 대선에서는 '아이오와의 코커스, 뉴 햄프셔의 프라이머리'가 선거의 판세를 미리 짚어주는 중요한 좌표라고 여겨진다. 경선 결과 선정되는 대의원의 숫자는 두 주를 합쳐 130여 명에 불과해, 50개주 전체 7000여 명에 비하자면 실제 영향력은 아주 적은 셈이다. 하지만 두 곳의 경선에서 승리한 자는 정치적 엘리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일반 국민들이 누구를 선택할지 결정하는데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때문에 경선 후보자들은 이 곳에서의 연설과 유세에 총력을 기울이고, 연설과 토론회를 통해 대중에게 검증을 받고자 애쓴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이런 기회를 통해 후보자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예비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이 정확하고 철저해질수록 그들이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본격적인 경기에 앞서 자신이 서 있는 곳의 좌표부터 제대로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29.2%  vs 22%


한국의 총선 역시 눈앞에 다가왔다. 4.13 총선의 선수로 뛰기 위해 900명이 넘는 예비후보들이 이미 등록을 마친 상태이다. 우리의 선거 좌표는 제대로 찍히고 있을까. <뉴스타파> 의 보도에 의하면, 현재 등록된 예비 후보자 가운데 29.2% 전과 경력이 있다. 일반 국민의 경우 그 비율이 22%로 낮아진다. 국민을 대표하겠다는 인물들이 일반 국민보다 범죄경력이 더 많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 본격적인 선거에 앞서, 예비후보자를 검증하는 과정에서부터 좌표가 어긋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몇 가지만 그대로 옮겨 적어 본다.


2009년 용산 참사...김석기 전 서울청장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고향인 경북 경주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2009년 6명의 희생자를 낳은 용산참사 당시 경찰 지휘 책임자였다. 무리한 진압이었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사건 발생 20일만에 김 전 청장은 자진사퇴 형식으로 경찰을 떠났다.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희생된 용산 참사의 책임 소재를 놓고 논란이 많았지만, 검찰과 법원은 모든 책임을 철거민들에게 떠넘겼다. 경찰에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았다. 경찰 현장지휘관이 “진압작전 이전에는 농성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다”고 진술했지만 검찰과 법원은 무시했다. 불미스럽게 경찰을 떠났지만, 김 전 청장은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스폰서 검사...박기준 전 부산지검장

2010년 경남지역의 건설업자 정모 씨의 폭로로 시작된 ‘스폰서 검사’ 사건의 중심 인물인 박기준 전 부산지검장은 울산남갑 지역구에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면직 처분이 확정된 지 2년만에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선언한 것이다. ‘스폰서 검사’ 사건은 2010년 MBC <PD수첩>을 통해 알려졌다. 50명 넘는 검사들의 이름이 거론됐는데, 박 전 검사장은 그 정점에 있었다. 당시 방송에서는 박 전 검사와 스폰서 정모 씨의 대화내용이 공개돼 충격을 줬다.

뭐라해야 되노. 방금 박 검사님 말씀하실 때도 진짜 속된 말로... 우리가 술을 한두 번 먹었으며 오입(성매매) 한두 번 했나? 막말로… 원정까지 갔다오면서…(스폰서 정씨)

지금 내가 이제 뭐 우리 정 사장이 이야기를 하니까 드러내서 그런데 그거는 우리가 말 하지 않고도 서로 이심전심으로 아, 너와 나와의 관계는 그런 정도의 동지적 관계에 있고 서로 우리의 정은 그대로 끈끈하게 유지가 된다. 이런 것은 서로 느끼는 거잖아.(박기준)

박 전 검사장은 본인이 접대를 받은 것 외에도 수십년 동안 스폰서와 가깝게 지내면서 후배 검사들을 데리고 가서 접대를 받도록 한 사실도 드러났다. 뉴스타파는 박 전 검사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그를 만났는데, 그는 “이미 특검을 통해서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고 당당하게 입장을 밝혔다.


@ 미국 5센트, 토머스 제퍼슨

<미국 공교육의 역사, 스쿨>에서 전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확고한 교육 철학이 등장한다. 그와 비슷한 신념을 가진 정치인들은

미국이라는 신생 공화국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새로운 정치 체제하에서 자유와 질서의 미묘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 덕망 있는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는 분별력, 그리고 시사적 논점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교육받아야 한다


는 '공교육의 의미'를 거듭 주장했다.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능력과 덕망을 두루 갖춘 지도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지도자가 선출되기 위해서는 먼저 분별력을 갖춘 현명한 유권자들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지역구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예비후보들을 제대로 검증하고 자신만의 정확한 좌표를 갖기 위해 애쓰는 '시민'이 필요한 것이다.


교육의 제 1 목적은 '합리적인 정치적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일반 시민의 양성이다. 예술가와 기술자, 교양인을 길러내는 것은 그 다음이다. 정규 교육을 마친, 선거권을 가진 우리들은 당장 예비후보가 지역 사회를 위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 어떤 정치적 신념을 지켜왔는지, 누구의 이익을 대변해왔는지 촉각을 곤두세워 판단해야 한다. GPS가 정확히 잡히지 않은 기록계로는 엉뚱한 신기록만 세운다. 총선 본선과, 대선에 가서 눈에 불을 켜봤자 때는 늦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지역구의 예비후보자 수는 23명이나 된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숫자라고 한다. 나의 좌표계부터 부지런히 맞춰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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