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C 공모전 콘티 짜기와 '단순함'의 힘
스쿼트-런지-리프팅-스쿼트-런지..
순식간에 20분이 지나갔다. 유튜브를 통해 새로 찾은 실내 운동 영상 때문이었다. 단순한 동작들을 각각 25번씩 반복하는 구성이었다. 금세 등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잠깐 몇 동작만 따라 해 볼 생각이었는데, 숫자 카운트가 넘어가며 한 동작을 한참 동안 반복하는 영상은 생각 없이 따라 하기 좋았다. 단순하지만 확실히 특정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동작이 반복되었다. 빠른 템포의 음악과 쉴 새 없이 떠드는 말소리에 떠밀려, 숨을 돌려 보니 마지막 동작까지 끝이 나 있었다.
오늘은 영상 '콘티'를 짜보는 실습이 있었다. 콘티는 '콘티뉴이티(Continuity)'의 줄임말로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의 촬영을 위해 필요한 아주 자세히 쓰인 각본을 뜻한다. 그 원어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성공적인 콘티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어야 한다. 끝까지 읽히지 않는 대본은 실패작이다. 때문에 콘티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독자의 관심을 끝까지 끌어갈 수 있을까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콘티뉴- 되지 않는 콘티로는 좋은 영상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튜브에서 찾은 운동 영상은 훌륭한 콘티로 짜여 있었다. 별 뜻 없이 재생 버튼을 누른 사람을 어떻게 끝까지 따라 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좋은 콘티의 3대 요소인 단순함(Simple), 의외성(Surprise), 재미(Smile) 가운데 첫 번째가 돋보였다. 단순한 동작을 충분한 시간 동안 반복한다. 그 사이 보는 사람은 그 동작을 충분히 이해하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한 장면 한 장면 집중하지 않아도 전개를 따라가는데 무리가 없다. 다음 화면에서 동작이 달라지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첫 번째 동작을 이해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는 이가 이미 학습했기 때문이다.
오늘 제작한 영상 콘티의 주제는 '공공질서'였다. 처음 생각한 콘티에서는 복잡하게 짜인 에피소드와 텍스트로 많은 의미를 담고자 했다. 실제 사람이 등장하고, 자동차가 등장하고, 골목길 배경과 긴 텍스트가 등장했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콘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미 '그림이 너무 복잡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말로 설명하는 것부터 어려워지니 이를 영상으로 구현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고생한 것보다 훨씬 지루할 것이다. 선생님의 지적이 정확했다. 첫 번째 콘티는 끝까지 볼 마음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모든 설정을 버리기로 했다.
우리의 두 번째 콘티에서는 모든 촬영이 실내에서 이루어진다. 사람도 등장하지 않고, 자동차도 지나가지 않고, 좁은 골목길 풍경 사진이 필요하지도 않다. 우리는 체스판과 체스 말들을 이용해 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직관적으로 연결되는 이미지와 상징만으로 충분히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훨씬 재미있었다. 끝까지 흥미를 갖고 볼 수 있는 영상 자체의 매력도 생겼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명쾌하게 설명되지만, 그 단순함이 지루하기보다 오히려 긴장감을 살렸다. 어떤 부분을 일부러 덜 보여줬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올 장면이 기대가 되는 것이다.
<소셜 애니멀>의 여주인공 에리카는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가는 인물들이 모이는 '다보스포럼'에 참여할 기회를 얻는다. 그곳에서 그녀는 저명한 기업인, 정치인, 경제학자, 저널리스트 등 세계경제를 주무르는 거물급 인사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과 차를 마시고, 카드 게임을 하며 며칠간 함께 시간을 보낸 에리카는 다음의 결론을 내린다.
"전직 수상, 세계 석학, 글로벌 기업의 총수. 그들이 남들보다 특별히 지식이 더 많거나, 수사의 논리력이 뛰어난 건 아니다. 그들이 그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를 꼽으라면 바로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능력'일 것이다."
세계 경제 위기, 한 국가의 군사 안보 문제 등. 아무리 복잡해 보이는 문제라도 그들은 단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일단 그들이 그렇게 설명하고 나면 그다음부터 그 문제가 너무나 명쾌하게 이해되는 것이다. 그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고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문제의 본질을 꿰어 단순화시키면,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건 어렵지 않다. 한 문제를 같은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 지도자의 능력은 얼마든지 발휘된다. 추진력과 권위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영상 문법 역시 단순함에서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함이 이야기를 끝까지 진행시키는 추진력이 된다. 세계적인 정상의 능력은 너무나 복잡하게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데 있다. 그 단순하고 명쾌한 관점이 제시되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그림을 보고 판을 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번 고정된 그림은 쉽게 움직이지 않고, 그 안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하는데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다. 영상을 만드는 이의 권력 역시 마찬가지이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화면에서 모두가 공통적인 그림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순간 강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