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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Jan 25. 2016

균형감각을 위하여

전신 스트레칭과 창작론


제주 공항엔 서울행 비행기가 발이 묶였고, 오늘의 나는 달리기와 수영 모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침에 수영복을 챙겨 나오지 않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전화로 문의한 동네 헬스장에선 일일 이용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며칠간의 추위에 떨어서인지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몸이 나른했다. 집에 들어온 이상 다시 나가기는 어렵고, 오늘의 운동은 '전신 스트레칭'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나는 대학교 1학년 재즈 댄스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스트레칭' 시간이란 걸 꾸준히 갖게 되었다. 재즈 음악에 따라 춤을 추기는커녕, 팔과 다리를 내 마음대로 움직일 줄 모르는 신입들에겐 스트레칭 시간이 훈련의 거의 전부였다. 공연을 앞두고 하루 4~5시간 연습 일정 가운데 처음 1시간은 오로지 몸을 쭉쭉 늘리는 스트레칭에 집중했다. '거울 붙이기'라고 불리는 다리 찢기 동작은 신입이나 선배들이나 긴장하게 만드는 관문이었다.


@ 균형 감각은 '버티는 능력'이다

'거울 붙이기'를 하기 위해 먼저 두 다리를 100도 이상 큰 각으로 벌리고 앉는다. 그대로 연습실 전면 거울에 양 발을 붙인다. 몸을 서서히 거울 앞으로 가까이 옮기면서 두 다리의 각을 180도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다. 날을 잡아두고 한 명씩 거울 붙이기를 시키는데 말 그대로 될 때까지 다리를 벌리고 있어야 했다. 울고불고 소리가 터져 나와도  한 번씩은 자신의 한계까지 거울에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사타구니에 전해지는 고통에 더 이상 거울에 가까워지기 싫은 상체와, 양 옆에서 허벅지를 사정없이 밀어대는 선배들과의 힘겨루기였다.


유연성과 균형 감각은 '버티는 힘'에서 나온다는 걸 배웠다. 근육과 물리적 힘의 긴장 상태를 오래 참아낼수록, 그리고 그것을 더 큰 강도에서 지속시킬수록 우리 몸은 팽팽한 균형을 유지할 법을 익히게 된다. 먼저 균형을 잡는 데 필요한 다양한 근육에 힘이 붙는다. 그리고 내가 버틸 수 있는 한계치에 대한 감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고통스러운 몸의 긴장 상태에서 느낄 수 있는 쾌감을 알게 되면 균형을 잡는 일은 점점 수월해진다. 끙끙대는 신입들 곁에서, 보기만 해도 질릴 정도로 다리를 찢어대는 선배들의 표정은 생각보다 밝았다.  


@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글의 길이를 생각의 길이에 맞춰라"


최근 읽은 균형 감각에 대한 문장 중 가장 명쾌하다.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쓰려고 하면 횡설수설하고 중언부언하게 된다. 김대중, 노무현 역대 두 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없이 고쳐 써야 했던 작가의 충고는 따끔했다. 그리고 굉장히 실용적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바를 모두 문장으로 적으면 글이 산만해진다. 끝까지 읽혀나갈 긴장감이 없고, 그 안에 담긴 내용도 빛을 잃어버린다. 꼭 자신의 생각만큼 글을 쓰는 작가라면, 숙고하지 않고 그저 떠올린 단상들과 '진짜 생각' 사이에서 신중하게 쓸 것을 골라낼 것이다. 그 과정은 자기 자신과 대치하는 긴장의 연속일 것이다.


오늘은 자신의 '창작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났다. '생각을 많이 하세요!', '감수성을 기르세요!'. 그는 거의 윽박지르듯 말했다. 나에게 '생각'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주느라 본인이 생각할 시간을 내가 뺏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해질 정도였다. 그는 한 시간에 평균 20번 정도 이 '생각'이란 것,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감수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3시간째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차라리 그가 아무  말없이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더 효과적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생각을 더 많이 하라'는 그의 간절한 호소는 내겐 '빛 좋은 개살구'였다.


말의 길이도 생각의 길이에 맞춰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듣는 이로 하여금 얼마나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 지게 만드는지 알아야 한다. 그가 '자신만의 특별한' 창작열에 대해 조금 덜 자랑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기발한 생각을 하는 딸과 살고 있는지 딱 한 번만 이야기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졌으면 그 답이 자신이 예상한 바와 다르더라도, 새로운 긴장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차라리 말을 잠깐 멈추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 데이비드 브룩스, <소셜 애니멀>


' 현명한 방랑자는 사실과 이성을 초조하게 쫓지 않고 불확실성과 수수께끼와 의심 속에서 견디는 그 능력으로 참고 기다린다.' <소셜 애니멀>


적어도 창작, 생각, 감수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면 그것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 상태를 예민하게 느끼고, 남들보다 더 오랫동안 버틸 줄 알아야 한다. 버티는 능력이 곧 균형 감각이 되고, 창작은 곧 '비범한 균형 감각'을 발휘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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